대림 시기는 예수님의 성탄절을 준비하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시기의 주인공은 당연히 예수님이시겠지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예수님은 준비와 기다림의 대상이자 목적이시지만, 실제로 준비하고 기다리는 행위의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어떻게 준비하고 기다리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의 성탄과 재림의 의미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겠지요. 그러니 우리가 비록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그 역할의 비중은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바로 이 점을 대단히 강조했습니다. 그는 메시아의 오심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분을 제대로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었습니다. 요한이 알려준 확실한 방법,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셨던 그 방법은 바로 ‘회개’였지요. 요한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줄 때도 단순한 정결 예식이나 의례적인 행위로서가 아닌, 회개를 전제하고 지향하는 표시로 세례받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세례를 “회개의 세례”라고 불렀지요.
더군다나 그 세례는 회개의 시작이고 표시일 뿐, 완성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회개와 그 완성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한 실재 삶의 변화’에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죄악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깊이 통회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선한 것으로 바꾸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진정한 회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우리가 고해성사를 통해서 늘 경험하고 있는 바이기도 합니다. 고해소에 들어갔다 나온다고 해서 자동으로 다 처리되는 것도 아니고, “신부님이 알아서 다~” 해주지도 못합니다.
비록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얼마든지 세례 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지만,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와 함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뿐만이 아니라, 다른 받을 수 있는 것들을 이미 다 받았지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예수님께도 스스로에게도 계속해서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