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말씀은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모든 것을 걸고 대답하신 성모님의 각오입니다. 어쩌면 스스로 감당할 수도 없을 하느님의 일을 수행하시기로 응답하신 부분이지요. 어떤 업적이나 야망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겸손하신 성모님은 완전히 자기 자신을 버리고 오롯이 하느님의 도구가 되기로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바치는 묵주 기도는 환희의 신비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로 담담하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엄청난 운명의 결단과 포기가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구원 역사의 정점인 파스카 사건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주님 강생 신비의 순간입니다.
우리가 묵주 기도를 바치면서 가장 중요한 신비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중요하지 않은 신비와 단은 결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성모님께서 당신의 운명을 하느님께 맡기지 않으셨다면, 그리고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그 순간을 거부하셨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지를 생각해보면 오늘 복음은 구원 역사의 중요한 순간이고 숨을 멈출 수밖에 없는 장면임을 알 수 있지요.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빛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바치는 아름다운 묵주 기도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온 생애가 담겨있는 슬라이드 필름 같은 기도입니다.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당신 사랑을, 당신 수난을, 당신 마음을, 당신 은총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성모님의 신앙고백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성모님은 이 고백으로 고난과 시련의 길, 십자가의 생을 살아가시지요. 여인으로서의 삶, 어머니로서의 삶은 온전히 하느님 도구로서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묵주 기도는 예수님의 삶과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 구원의 모든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 여백에는 성모님이 늘 함께하고 계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교구 수호자이신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지냅니다. 우리 부산교구의 수호자이신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묵주 기도를 함께 바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