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과공지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30차 청소년 주일 담화

(2015년 5월 31일)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우리는 2016년 7월 세계청년대회가 개최되는 크라쿠프로 가는 영적 순례를 계속합니다. 이 여정의 지침으로 참행복이 선택되었습니다. 지난해에 우리는 산상 설교의 포괄적인 맥락에서 나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참행복에 관하여 성찰하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참행복의 혁명적인 의미를 발견하였고, 용기 있게 행복을 찾아 가슴 벅찬 모험을 떠나라는 예수님의 강력한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올해에는 여섯 번째 참행복에 관하여 성찰하고자 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1. 행복에 대한 갈망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하신 이 중요한 설교에는 행복이라는 말이 아홉 번 나옵니다(마태 5,1-12 참조). 그것은 마치 후렴구처럼,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참행복에 이르는 길로 함께 나아가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상기시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모든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 행복에 대한, 충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을 심어주셨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고 영원에 대한 갈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보화를 끊임없이 찾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끼지 않습니까?
 

창세기의 첫 장들은 우리가 부름 받은 놀라운 ‘참행복’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다른 이들과, 자연과, 우리 자신과 각각 나누는 온전한 친교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가 자유롭게 당신께 다가가도록, 하느님을 뵙고 그 곁에 있도록 계획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빛은 모든 인간관계를 진실하고 투명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원래의 깨끗한 상태에서는 가면을 쓰거나 음모를 꾸미거나, 서로에게 자신을 감출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투명하고 깨끗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유혹에 넘어가서 하느님과 맺은 깊은 신뢰의 친교 관계를 깨뜨리면서 죄가 인간 역사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창세 3장 참조). 그 결과는 곧바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 다른 이들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 결과는 정말 비극적입니다! 우리가 지닌 원래의 깨끗함이 더럽혀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더 이상 하느님 곁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감추고 자신의 알몸을 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을 뵈어 얻은 빛을 잃어서 주변의 모든 것을 왜곡되고 흐릿하게 보았습니다. 행복 추구의 길잡이가 되었던 내면의 나침반은 방향을 잃어버리고, 권력과 소유에 대한 유혹과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쾌락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그들을 슬픔과 고통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시편에서 인류가 하느님께 드리는 절절한 탄식을 듣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 주랴?’ 주님, 저희 위에 당신 얼굴의 빛을 비추소서”(시편 4,7). 한없이 좋으신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보내 주시어 이 한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강생과 삶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일찍이 상상할 수 없었던 새 지평을 열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이 갈망하는 모든 선과 행복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만 여러분의 가장 깊은 갈망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종종 이 갈망은 기만적인 세속의 약속들로 좌절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이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토록 매료시키는 아름다움이십니다. 바로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온전함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켜 주시며, 그러한 갈망은 여러분이 타협에 안주하지 않게 해 줄 것입니다. 바로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거짓된 삶의 가면을 벗어버리라고 촉구하십니다. 바로 그분께서 여러분 마음 안에 있는 가장 참된 선택들을 알아보십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러한 선택들을 어떻게든 막으려 합니다. 여러분이 삶을 통하여 무엇인가 훌륭한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을 바로 예수님께서 불러일으키십니다”(제15차 세계청년대회 폐막 밤기도, 2000.8.19., 「가르침」(Insegnamenti) 23/2[2000],212).
 

2.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이제 어떻게 사람들이 깨끗한 마음을 통하여 이러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마음이라는 말의 성서적 의미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히브리인의 사고에서 마음은 인간의 감정과 사유와 의지의 중심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겉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보십니다(1사무 16,7 참조). 그래서 우리도 마음으로 하느님을 뵙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인간 육신과 영혼이 결합된 것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온전한 인간을 요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깨끗하다는 의미의 단어로,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리스어 카타로스(katharos)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청결하다, 맑다, 오염되지 않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외적인 형식에 얽매인 정결례의 고정관념을 거부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깨끗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모든 물건과 사람(특히 나병 환자와 이방인들)과의 접촉을 금지하였습니다. 바리사이들은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처럼 손을 씻지 않고, 그릇 씻는 예식과 관련한 많은 전통들을 지키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마르 7,15.21-22).
 

그렇다면 깨끗한 마음에서 나오는 행복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을 더럽히는 악의 목록을 살펴보면 우리는 특히 우리의 관계가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마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식별하고 올바르고 사려 깊은 양심을 함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로마 12,2)됩니다. 우리는 피조물, 공기와 물과 양식의 깨끗함에 대하여 건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 우리 마음과 관계의 깨끗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까? 이러한 인간 생태계는 우리가 아름다움, 참사랑, 거룩함에서 오는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보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마음의 안식을 어디에서 찾습니까?”(벨기에 젊은이들과 가진 대담, 2014.3.31. 참조) 우리는 참된 보화에 마음이 끌리거나 거짓된 보화에 집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고 아니면 넋이 나가서 게을러지고 무기력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선은 우리가 하느님과 맺는 관계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신합니까?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있는 그대로 조건 없이 사랑하시고 환대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이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어버립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깨달아야만 우리의 삶은 의미 있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인 젊은이와 나누신 대화를 기억합니까?(마르 10,17-22 참조) 마르코 복음사가는 주님께서 그 젊은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당신을 따라 나서서 참된 보화를 찾으라고 초대하신 것에 주목합니다(마르 10,21 참조).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기를 기원합니다.
 

청년기는 넓고 참되며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갈망이 여러분 마음 안에 꽃피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러한 능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소중한 보화의 가치를 왜곡시키거나 훼손시키거나 없애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이웃을 이기적인 수단으로, 심지어 쾌락의 대상으로 이용하려고 할 때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상심하고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참사랑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사랑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 바오로 성인이 참고 기다리며 친절한 것이라고 설명한 사랑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4-8).
  

저는 여러분에게 사랑을 해야 하는 인간 소명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라고 권유합니다. 또한 저는 여러분이 사랑을 통속적인 것으로, 특히 단순히 성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널리 퍼진 시류에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합니다. 이러한 사랑에는 아름다움, 친교, 신의, 책임감이라는 그 본질적 속성들이 결여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상대주의와 덧없는 문화 속에서 많은 이들은 순간적인 ‘즐거움’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평생 동안 헌신하겠다는 약속, ‘평생 지키는’ 궁극적인 결정을 내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혁명가가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시류를 거스르라고 촉구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화에 맞서 싸우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모든 것이 덧없다고 여기게 하고 궁극적으로 여러분이  책임지지 못하고 참사랑을 할 수 없다고 믿게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고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시류를 거스르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또한 행복해질 용기를 가지십시오”(제28차 세계청년대회 봉사자들과의 만남, 2013.7.28.).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은 용감한 모험가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에 대한 교회의 이러한 풍요로운 가르침을 발견한다면, 그리스도교가 행복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억누르게 하는 금령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삶의 계획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3.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모든 이의 마음 안에서 주님의 초대가 끊임없이 울려 퍼집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아라”(시편 27[26],8). 동시에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불쌍한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라네”(시편 24[23],3-4). 그러나 우리는 결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과 우리 저마다의 인생사를 통하여 언제나 첫 발걸음을 내디디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현존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큰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이사 6,5).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깨끗이 해 주시고, 그의 입술을 만져줄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천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이사 6,7). 신약 성경에 따르면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첫 제자들을 부르시어 고기잡이 기적을 보여주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그분 무릎 앞에 엎드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그러자 곧바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그리고 예수님 제자 가운데 한 명이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8-9 참조).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떠한 곳이나 상황에 있든지 상관없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과의 만남으로 초대하십니다. 그저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분과 만나려는 마음, 날마다 끊임없이 그분을 찾으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누구도 이러한 초대가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복음의 기쁨」, 3항).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에 주님께서 정화해주셔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늘 팔을 벌려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그저 작은 한 걸음을 내디디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특히 고해성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해성사는 우리를 정화하고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해주는 하느님 자비를 만나는 특권적인 기회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셔서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주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은 “그런데 어떻게요?”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500년 전 스페인에서 태어난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이미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저는 하느님을 뵙고 싶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나중에 이 성녀는 기도의 길에서 “우리가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분과 친밀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자서전』, 8,5 참조).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기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친구에게 말을 하듯이 예수님과 성부와 성령께 말씀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이분들은 여러분의 그저 그런 친구가 아니라 가장 위대하고 신뢰할 만한 친구분들이십니다! 여러분은 한 신자가 아르스의 본당 신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감실 앞에서 기도하면 ‘저는 그분을 보고 그분은 저를 보고 계십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715항 참조).
 

저는 다시 한 번 여러분이 성경을 자주 읽으면서 주님을 만날 것을 권유합니다. 여러분이 아직 성경 읽기에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면 복음서에서 시작하기 바랍니다. 매일 한 두 줄을 읽으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말씀을 하시고 여러분의 길을 밝혀 주시도록 하십시오(시편 119[118],105 참조).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 형제자매의 얼굴에도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특히 가장 잊힌 이들, 곧 가난한 이들, 굶주린 이들, 목마른 이들, 이방인들, 병든 이들, 감옥에 있는 이들의 얼굴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마태 25,31-46 참조). 이러한 체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하느님 나라의 논리에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마음으로 자신을 굽히고 자신의 삶을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과 나눌 줄 압니다.
 

기도 안에서, 성경을 읽는 가운데, 그리고 형제자매로 사랑하는 삶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면 여러분은 주님과 여러분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주님의 목소리가 여러분 마음을 불타오르게 할 것입니다(루카 24,14-35 참조).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눈을 열어 여러분이 당신의 현존을 인식하고 여러분 삶을 위하여 마련하신 사랑의 계획을 깨닫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혼인 생활, 곧 가정을 이루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있거나 곧 느끼게 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부르심을 ‘낡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교회 공동체는 교회와 현대 세계 안의 가정의 소명과 사명에 대한 성찰을 위한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여러분이 봉헌 생활이나 사제직의 부름을 받았는지 성찰해 보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치고 교회에 봉사하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도전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대답하면 여러분은 교회와 사회의 새 희망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결코 잊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행복입니다!
 

4. 크라쿠프를 향한 길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도 아는 것처럼, 이 참행복의 대상은 바로 여러분의 삶으로, 여러분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행복해질 용기를 내십시오!
 

올해의 청소년 주일에 세계 모든 곳의 젊은이들은 2016년 크라쿠프에서 열리는 커다란 모임의 마지막 준비 단계를 시작합니다. 30년 전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이 교회의 세계청년대회를 제정하였습니다. 베드로 후계자의 안내를 따르는, 모든 대륙에 있는 젊은이들의 이러한 순례는 참으로 섭리적이고 예언적인 행사가 되어 왔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이 세계청년대회가 지구 모든 곳의 많은 젊은이들의 삶에서 거둔 소중한 열매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얼마나 많은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졌습니까! 특히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발견이 이루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커다란 환대하는 가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회개와 성소가 이 모임에서 이루어졌습니까! 세계청년대회의 수호성인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사랑하는 크라쿠프를 향한 우리의 순례를 위하여 전구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은총이 가득하시고 지극히 아름다우시며 정결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이 길을 가는 우리의 모든 걸음을 어머니의 눈길로 바라보시며 함께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티칸에서
2015년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에
프란치스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 "2016년 부산교구 일정" 구글캘린더 사용 안내(PC, 스마트폰) file 가톨릭부산 2015.12.02 931
20 [담화] 제34회 인권주일 제5회 사회교리 주간 담화문 가톨릭부산 2015.12.01 109
19 [담화] 2015년 제32회 자선 주일 담화 file 가톨릭부산 2015.11.26 122
18 [담화] 2015년 제31회 성서 주간 담화 file 가톨릭부산 2015.11.26 42
17 [알림]교구 홈페이지 일시 서비스 중지 안내 관리자 2015.11.26 178
16 [부음] 김성도(모세) 신부 선종 file 가톨릭부산 2015.10.25 1271
15 2015년 9월 사제 정기 인사발령 가톨릭부산 2015.10.07 5087
14 [공지] 전국 공통 세례명을 씁시다 file 가톨릭부산 2015.10.07 3618
13 [담화] 2015년 제20회 농민 주일 담화 가톨릭부산 2015.10.07 84
12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에 따른 본당 및 기관 협조사항 가톨릭부산 2015.10.07 69
11 [담화] 분단 70년을 맞는 한국 천주교회의 반성과 다짐 가톨릭부산 2015.10.07 46
10 [담화] 2015년 환경의 날 담화 가톨릭부산 2015.10.07 28
9 [부음] 길의간(야고보) 신부 선종 가톨릭부산 2015.10.07 542
8 알림]2015년 성가정 축복미사 - 가족별 단체 사진 다운로드 안내 가톨릭부산 2015.10.07 120
7 [담화]“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첫 기념일을 맞이하여 가톨릭부산 2015.10.07 63
» [담화] 2015년 제30차 청소년 주일 교황 담화 가톨릭부산 2015.10.07 31
5 [담화] 2015년 제10회 교육 주간 담화 가톨릭부산 2015.10.07 24
4 [담화] 2015년 제49차 홍보주일 교황 담화 가톨릭부산 2015.10.07 25
3 [공지] 네팔 지진참사 구호활동을 위한 긴급 모금 가톨릭부산 2015.10.07 24
2 [담화] 2015년 노동절 담화 가톨릭부산 2015.10.0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