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구장 강론

2016. 4. 19. 부활 제4주간 화요일(대리구미사)

① 사도 11,19-26 ㉥ 요한 10,22-30.

 

   흠숭 - 기도의 근본자세

 

!!, 오늘 제 1독서 사도11장은 안티오키아교회에 대한 아름다운 역사를 전해줍니다. 스테파노의 순교로 초대교회가 박해를 받자,, 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났지만, 그들이 각 나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음이 전세계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중에서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안티오키아 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이 안티오키를 본부로 삼아,, 바오로 사도의 그 유명한 3차에 걸친 선교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묵상하겠습니다.

 

 

오늘도 기도에 대한 묵상을 계속하겠습니다. !! 지난 해에도 기도에 대한 많은 묵상을 했지만, 특히 지난 2월부터 기도에 대한 묵상을 해왔습니다. 기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드리는 번제임을 묵상하면서,, 기도는 기도함으로써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다음에 청원기도와 중재기도(전구)에 대해서도 묵상했습니다.

 

오늘은 흠숭에 대해서 묵상하겠습니다. 교회는 모든 성인에게 드리는 존경과 사랑을 공경지례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모님께 드리는 공경과 사랑을 상경지례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직 하느님께만 드리는 공경과 사랑을 흠숭지례라고 합니다. 오늘 하느님께만 드리는 흠숭에 대해서 묵상하겠습니다. 이렇게 공경에는 3단계가 있으며, 하느님께 드리는 최고의 공경을 흠숭이라고 합니다.

 

이 흠숭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기도가 무엇인지를 되새겨 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 2098항은 “첫째 계명이 명하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행위는 기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때가지 우리가 묵상한 것.. 즉 기도란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가장 구체적인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표현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작년에 우리는 기도란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높이는 것이며, 이 기도에서 가정 중요한 우리의 자세는 바로 겸손이다.”라고 묵상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559항). 바로 이것이 기도의 기본자세인 흠숭입니다. 즉 우리가 청원기도나 중재기도를 바칠 때나, 또는 감사기도나 찬미의 기도를 바칠 때에도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들어 높이고 하느님 앞에 겸손한 자세, 순명의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흠숭은 모든 기도의 기본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흠숭에 대해서 좀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흠숭은 전능하신 창조주 앞에 우리는 한낱 피조물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태도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우주전체가 하느님의 손에서 나왔고, 그분 손 끝에 달렸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도 주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공짜로, 은총으로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법칙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은 전부이시고, 우리는 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생명의 창조주시오, 주인이시고, 통치자이시며, 전부이신 하느님 앞에서 무한한 존경과 경외심을 가지고 하느님을 떠받들고 높이는 자세가 바로 흠숨입니다.

 

이런 흠숨의 자세를 신학자들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은 병마개가 아니라, 대지(大地)이시다.” 병마개는 내가 필요할 때에만 쓰고 내버리는 물건입니다. 하느님이 병마개가 아니라는 것은, 하느님은 내가 필요할 때, 은총을 주시고, 그다음에 내가 편안할 때에는 하느님을 생각도 잘 하지 않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대지이시다.’라는 뜻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땅을 밟지 않고서는 살 수 없듯이, 하느님은 우리 존재의 근본바탕이시며, 우리생명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때문에 우리는 하느님 없이는 생겨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단 일초도 살 수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27)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느님 사랑의 상대자로 창조되었습니다. 그 뜻은 인간은 하느님을 사랑할 때, 비로소 자기가 창조된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고, 재산이 많고, 많은 일을 하더라도, 하느님을 모르고,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의 인생이 인간적으로 보아 정말 성공한 삶이었다 하더라도, 하느님과 일치하지 않으면, 완전 실패입니다.

 

즉 인간은 하느님이 바로 자기 생명 자체이시고, 자기의 기쁨이며, 살아가는 목적 자체가 됩니다. 여기에서 인간은 하느님 앞에 완전히 엎드리고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흠숭의 자세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주님께서 명하시는 것입니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우리가 하느님께 이런 흠숭의 자세로 기도드리는 때는 바로 전례, 특히 미사 때입니다. 전례가 무엇입니까? 전례헌장 7항에 의하면, “전례는 사제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교회가 드리는 공적인 예배행위”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사를 봉헌할 때, 우리는 마태18, 20의 “둘이나 셋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고 하신 주님을 모시고, 교회공동체,, 하느님의 백성이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흠숭행위는 사제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의 찬미와 감사를 바치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총과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흠숭행위는 천국에서 우리가 바칠 영원한 찬미의 시작입니다. 예를 들면, 요한묵시록에는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흠숭과 찬미가 여러번 나옵니다. 그중에서 7,10~12을 보면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말하였습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우리 기도가 이런 흠숭의 자세로 해야 함을 잘 보여주시는 분은 성모님이십니다. 루가 1장을 보면,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님께, 구세주 예수님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이때, 성모님은 요셉성인과 약혼한 상태입니다. 즉 배우자가 있는 여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신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여자로서 죽을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오해와 고통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서도 성모님은 이렇게 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모님의 이 순명은 성모님의 심오한 겸손을 보여줍니다. 하느님 앞에 자신은 한낱 노예, 종이요 허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겸손으로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면서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불가능하게 보이는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근본자세, 바로 흠숭입니다.

 

이런 흠숭의 자세는 예수님에게서 절정을 이루고 완성됩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십자가 죽기 직전에 겟세마니 동산에서 성부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이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의 전능하심을 믿고 의탁하는 흠숭입니다. 이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바로 흠숭입니다. 이 흠숭이 절정에 이룬 것은, 자신을 십자가에 죽게 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명함으로써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죽음이 너무나 치욕적이고, 고통스럽고, 하느님의 저주같이 보였지만, 그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성부의 뜻에 순명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자세가 흠숭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께 청하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우리 삶의 첫 자리에 모시고, 우리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흠숭의 자세로 미사에 가고, 우리의 매일의 묵상이 이루지길 청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속에서 주님을 온마음으로 흠숭할 수 있도록 은총을 주는 영광송을 잘 바치도록 합시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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