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구장 강론

2016. 4. 26. 부활 제5주간 화요일(대리구미사)

① 사도 14,19-28          ㉥ 요한 14,27-31ㄱ.

 

          평화(pace)를 얻는 길

 

!!,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당신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바로 그 평화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가득히 내리길 빕니다. 따라서 오늘은 기도에 대한 묵상을 잠깐 쉬고 평화에 대한 묵상을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유언과 같은 이 말씀을 받들어 교회는 매 미사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난 다음, 하느님 백성에게 평화와 일치를 비는 기도를 바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일찍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 하셨으니,,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소서.”

이렇게 미사때마다 주님께 청하는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평화를 얻는 구체적인 방법을 몇가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시편 85,13이 가르칩니다:

“정의가 당신 앞을 걸어 나가고, 평화가 그 발자취를 따라가리라.” 시편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정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역으로 말하면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화와 정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정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가사이에도, 정의가 있어야 평화가 있습니다.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 영토를 불법적으로 차지하려고 하면, 정의가 깨어지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회사에서 회사가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하고 월급을 주지 않으면, 정의가 깨어지기 때문에 평화가 없습니다. 한 동네 어떤 집에서 밤에 계속 해서 떠들고 소란을 피우면, 다른 집을 잠을 자지 못합니다. 정의가 깨어집니다. 그러면 그 아파트에 평화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부사이에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한쪽이 너무 인간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면, 정의가 없고 따라서 가정에 평화가 없습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도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는 하느님께 우리가 사랑으로 답하지 못하고, 십계명을 어기면,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정의가 깨어지고 따라서 평화가 없습니다.

따라서 평화는 먼저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 받는 것이 정확해야 하고, 서로 평등한 관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금방 설명한 것을 시편 34,15이 아름답게, 그리고 단순하게 설명합니다:

“사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아서 뒤따라 가라!”(시 34, 15)

 

이렇게 평화를 얻는 방법이 정의롭게 사는 것을 이해하고 난 다음 우리는 몇가지 평화를 얻는 구체적인 방법:

① 급하게 서둘지 말것.(급하는 구는 것은 악마가 하는 짓이다-이태리속담) 우리나라와 같이 빨리빨리 병에 걸린 사회일수록 천천히 여유를 갖는 것이 평화를 얻는 지름길. 예를 들면, 울산역에 갈 때, 한 10분전에 여유있게 도착하는 것이 평화를 얻는 방법,, 어떤 기차가 막 떠나려고 할 때,, 헐레벌떡 뛰어오는 사람들 있다. 결코 평화롭지 못할 것. 작년부터 성안동에 건축이 많은데.. 많은 집들이 너무 급하게 짓는다. 아래층 콘크리트가 다 굳기 전에 윗층을 올리는 바람에 무너지는 사고가 뉴스에 난다,, 결코 평화롭지 못할 것.

 

② 말과 옷차림과 예의를 정중하게 할 것. 말을 함부로 하거나 너무 많은 말을 하면, 평화가 없다. 또 경박한 옷차림과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평화를 잊게 한다. 너무 짧은 치마나 해수욕장에서 입을 옷을 성당이나 점잖은 장소에서 입으면, 신경이 쓰여 결코 평화가 없다.

 

③ 지금 현순간에 집중할 것. 요한23세 교황님께서는 지나치게 앞날을 걱정하지 말 것을 충고.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 것. 하루도 안되면, 지금 이 한시간만 십자가를 지고 성실히 살것. 일생동안 져야할 십자가와 고통을 생각하면, 평화를 잊어버린다.

 

④ 지나친 완벽주의나 세심증도 평화를 앗아갑니다. 왜냐하면 지나친 완벽주의나 세심증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을 조금도 쉬지 못하게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습니다.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 한분뿐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실수하고 부족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그때가 우리가 겸손의 덕을 닦을 때이고,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할 때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맡기고 단순하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 바로 평화를 얻는 길입니다.

 

⑤ 고통과 시련 앞에서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 고통을 통하여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의 정신을 간직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고통 속에서도 평화를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통을 통하여 자신이 정화되고 더욱 주님께 가까이 가기 때문입니다.

 

⑥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인내할 것. 이것은 평화를 얻는 중요한 요건입니다. 자신이 실수하고 부족할 때, 자학하지 않고,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족하고 죄많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근거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족한 우리를 하느님께서 무한히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채로, 죄있는 채로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고 주님께서도 우리 죄인을 위해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로마5,8에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라고 하신 것은 바로 우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 주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며,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⑦ 평화를 얻는 또 다른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고 자비로워야 합니다. 꼬치꼬치 따지기를 좋아하고, 지기 싫어하는 사람은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분란과 싸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하고, 내가 손해보는 일이 있어도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이 참으로 평화를 얻는 길입니다.

 

이 너그러운 마음은 주님의 자비를 깨닫고, 그 자비를 닮아,, 참으로 마음이 넓어진 영혼입니다. 바오로사도는 이런 넓은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평화롭게 지내라고 충고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로마 12, 17~18)

 

이렇게 오늘 7가지 평화를 얻는 방법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집안에 형제들이 싸워도, 어머니 앞에서는 평화롭게 됩니다. 어머니는 그 집안에 태양과 같은 따뜻하고 또한 자비롭고 인내하기 때문입니다. 자식들 하나하나를 사랑하고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스며,, 일치시키는 넓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작 어머니는 집안의 평화를 위해 자신은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모님의 평화는 예수님을 자기 삶의 중심에 놓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오늘 이 평화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에게 가득히 내리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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