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31호 2015.06.07 
글쓴이 홍경완 신부 

갈수록 정의보다는 불의가 더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정의의 하느님이 계신다면 왜 가만히 계신 것일까 하는 의심이 점점 더 많이 듭니다. 불의가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가요? 불의와 부조리 속에서 신앙을 지킬 힘은 점점 더 약해집니다.

홍경완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mederico@cup.ac.kr

모두가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지만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께 대한 신앙마저 위협할 만큼 불의와 부조리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 까닭을 인간의 자유의지의 남용, 곧 인간에게 허락된 자유를 잘못 사용하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불완전한 인간 본성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불의와 부조리가 하느님의 부재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현존을 더 강력하게 증언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의롭게 살아가려 해도 마지막까지 모두에게 완전히 정의롭게 대하지는 못합니다. 그건 우리 인간의 영역과 능력을 벗어나 있습니다. 그게 불완전한 우리 인간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완전한 정의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고, 그런 점에서 완전히 정의로운 인간 사회는 하느님만이 이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부 테르툴리아누스(Tertulianus)가 말하는‘나는 믿는다, 부조리하기 때문에(Credo, quia absurdem)’라는 오랜 신앙의 경구를 다시 귀담아들어야 할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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