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274호 2014.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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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순호 신부 |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셨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죽는 줄 뻔히 알면서 그 길을 피하지 않고 계속 가셨다면, 그것은 간접적인 자살행위가 아닙니까? 제가 알기로는 교회는 자살을 금지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간접적 자살로 교회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까?
권순호 신부 / 주례성당 주임 albkw93@hotmail.com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아이를 낳다가 죽은 어느 한 어머니를 성인품에 올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를 가졌을 때, 의사들이 자녀를 낳으면 어머니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교회 가르침에서도 어머니의 목숨에 직접적인 위험을 가져 올 경우 인공 유산을 허락합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아이를 낳기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어머니를 간접적으로 자살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거룩한 어머니라고 칭송합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구명복을 양보하고 배에 먼저 내리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간접적인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사랑의 희생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존경합니다. 자살은 현실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금지하는 안락사는 바로 이런 맥락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철학자 맥머래이는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사랑은 타인을 돌보기 위해 자신에 대해 잊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랑의 숭고한 희생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이런 사랑의 숭고한 희생 행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