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201호 2013.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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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경완 신부 |
하느님의 의로움과 자비로움은 상반되는 것이 아닌가요? 정의로우신 하느님과 자비로우신 하느님이 어떻게 같은 하느님일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홍경완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mederico@cup.ac.kr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우선 신에 대한 기본 관념을 바꿔야 합니다. 관념 또는 개념이란 말은 어떤 것을 붙잡기 위해 필요합니다.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눈앞에 있는 사과를 사과라고 알기 위해서는 사과라는 개념이 우리 머릿속에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정의와 자비같은 추상적인 개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이 자비로움이고 어떤 것이 정의로움인지 상세히 그 내용이야 모른다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모든 개념은 인간의 앎을 위한 도구들입니다. 그런데 정의니 자비니 하는 개념은 모두 인간 사회에 적용되는 개념일 따름입니다. 인간들 사이에만 가능한 이 개념들을 인간과는 전적으로 다른 분인 신에게 적용할 경우 질문처럼 어려움이 생깁니다. 인간에게 이들은 상반되는 뜻을 가진 개념으로, 이 둘 모두를 한꺼번에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그건 인간에게만 그럴 뿐입니다. 하느님에게는 이 두 개념이 아무런 모순 없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 인간과는 전적으로 다른 절대타자(絶對他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신의 자비가 곧 신의 정의다’라는 말이 하느님에게는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