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192호 2012.1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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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순호 신부 |
점을 보러 가면 안 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철학관 같은 데에서는 저의 미래의 진로 또는 삶의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명확한 해답을 즉시 얻습니다. 성당에서도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지 말고 명확한 해답을 주었으면 합니다.
권순호 신부(남산성당 부주임) albkw93@hotmail.com
어떤 사람이 거리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무엇을 찾느냐고 물으니 그는 바늘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서 바늘을 잃어버렸는지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에서 잃어버렸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왜 밖에서 찾는지 의아해합니다. 그러자 그는 밖이 더 밝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흔히 명확한 해답을 찾지만, 명확한 것이 정답이 아닐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는 하느님과 관련된 일을 신비라고 표현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손에 명확하게 잡히는 것을 넘어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시대의 사람들은 과학과 달리 명확하지 않은 것들은 다 존재하지 않는다며 하느님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삶의 참 의미는 과학 기술이나, 무당집의 부적이나, 명료한 심리분석이나, 철학관의 운세, 사이비 종말론 교회의 예언 하나로 밝혀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각과 생각과 느낌을 넘어 서 계신 신비로운 하느님에게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겼을 때 인생의 참 의미가 드러나게 됩니다. 대림 시기는 하느님의 신비에 우리 자신의 맡기는 태도를 기다림으로 표현합니다. 세상 속에서 명확하게 보이는 답들과 방법들과 목표들이 다 거짓으로 허물어질 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신비가 드러날 것이라고 성경은 전합니다. ‘인생의 해답은 여기에 있다. 아니면 저기에 있다.’라고 참 쉽고도 명확하게 외치는 소리에 현혹되지 않고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참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