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191호 2012.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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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경완 신부 |
이웃사랑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까지가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인가요?
홍경완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mederico@cup.ac.kr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루카 10,29∼37)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 비유는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교사의 당돌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압권은 비유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예수님의 반문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느냐?’라고 되물으십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이 말하는 이웃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를 넘어섭니다. 그건 그냥 자연적 조건으로 정해지는 우연한 관계 그 이상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웃은 ‘주어지는 것’을 넘어 ‘되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사랑의 범위는 ‘내가 어디까지 이웃이 되어줄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답은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내가 어느 쪽을 보고, 어디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되면 평생 이웃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이웃은 대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내 옆에, 내 주변에, 내가 애써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보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