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176호 2012.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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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순호 신부 |
대부분의 사람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죄인이기 때문에 죽으면 연옥에서 벌을 받고 난 후에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하느님이 자비로운 분이시라면 우리를 굳이 무서운 연옥 벌을 받게 하지 않고 바로 천국으로 보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요?
권순호 신부(남산성당 부주임) albkw93@hotmail.com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에서 승리하고 흑인 노예에게 해방을 선포하지만, 자유의 상징인 선거권을 주는 것은 망설입니다. 그래서 보좌관 한 명이 그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여기에 말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꼬리를 다리라고 여기기로 합시다. 그러면 말의 다리는 총 몇 개입니까?” 보좌관이 “5개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링컨은 말합니다. “틀렸소. 말의 다리는 4개요. 꼬리가 정말 다리가 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꼬리를 다리라고 부르더라도 꼬리일 뿐이요.” 링컨은 아무리 노예에게 자유를 선포하더라도 노예가 참으로 변화하여 자유인이 되기 전에는 노예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실제로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연옥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기보다는 오히려 구원을 위한 변화와 정화의 기회이며, 하느님 배려이자 은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변화와 정화는 고통이 따릅니다. 따라서 구원의 과정을 예수님께서는 산모가 아기를 낳기 위해 고통(요한 16,21∼22)으로, 베드로 사도는 금이 되기 위한 불의 제련으로(1베드 1,6∼7) 이야기합니다. 성장과 완성을 위한 연옥의 불은 파괴와 멸망을 위한 지옥의 불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죽음 이후에도 연옥이라는 정화의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