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명 | 국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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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일자 | 2015.12.18. 11면 |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부산가톨릭서예인회 회원이 붓글씨로 쓴 작품. 국제신문DB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한 해를 보내며 그 상대가 누구이든 내가 미워했거나, 미움 때문에 의도적으로 무관심했던 사람에 대한 용서에 대해 이 마지막 칼럼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용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며 용서하려면 먼저 결심이 필요하다. 결심하는 그 순간이 바로 용서의 시작이다. 사실 용서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상처받은 인간의 감정을 고려할 때 참으로 힘든 얘기다. 하지만 종교적 행위로는 가능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집착하면서 미움과 원한을 움켜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집착이 얼마나 우리의 진을 빼는지 모른다. 인간의 고통은 집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그놈을 용서하지 않겠다며 이를 갈다가 원한 속에 죽는다. 대단히 파괴적인 집착이다.
용서는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용서는 치유의 문제다. 정의만으로는 내 안의 상처와 울분을 치유할 수 없다. 파괴적 집착에서 벗어나 용서하기로 결심할 때 비로소 치유 과정은 시작한다.
자기 상처를 보여주면서 관심과 동정을 받고 싶어하는 이도 있다. 이런 사람은 누구든 자기편이 되어 상처 준 사람을 비난할 땐 기뻐하지만, 동조하지 않을 때는 그 사람을 비난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상처가 낫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이다. 상처가 나으면 그 상처를 준 사람을 계속 미워하고 괴롭힐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를 그대로 갖고 있으려는 다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심리치료자들의 말이다.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다 변화의 단계가 되면 돌연 치료를 멈춘단다. 이제 막 개선이 일어나려는 상황에서 다시 비참한 옛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제까지 익숙했던 고통을 떠나 변화를 맞을 미래의 불확실함과 불안 때문에 새롭게 변화할 자신을 대면하기를 주저한다.
이렇게 상처를 계속 지니고 있기 바라거나,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상처에서 치유되느냐 아니냐의 열쇠를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한테서 찾으려 한다.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이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고 자신이 바라는 대로 행동해야만 상처가 치유되리라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평생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삶은 선택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우리 자신의 행동과 반응은 우리 몫이다. 내 안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주체는 오직 나 자신과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느님뿐이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주님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많은 경우 상처를 준 사람은 이미 그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받아 피를 흘리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내게 상처를 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은 나도 상대처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을 대할 때 우리 자신은 잘못이 없는 존재,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존재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런가?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에게 주었는가. 상대나 나 자신이나 모두 용서가 필요한 존재이다.
오륜대 순교자성지 주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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