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985호 2016.03.13. 18면 

[복음생각] 나의 이웃에게 자비의 얼굴을 / 염철호 신부

사순 제5주일(요한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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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복음서와 달리 요한 복음은 ‘올리브 산’을 단 한 번 언급하는데(요한 8,1), 오늘 복음이 그 대목입니다. 오늘 복음 시작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신 뒤 이른 아침 성전으로 올라가시는데, 이는 매우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 성전 바로 동쪽 편에 위치해 있으며, 성전에서 보면 이른 아침 해가 뜨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아침 햇살이 올리브 산에서 성전으로 들어가듯 하느님 영광이 올리브 산에서 성전 안으로 들어오리라 믿었습니다(에제 11,23 43,2 등).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침 해가 뜨는 시간 올리브 산에서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은 마치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예수님께서는 앉아서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거처이고, 지성소에 있던 계약의 궤는 하느님의 어좌입니다. 앉아서 가르친다는 것은 권위를 상징하는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느님의 권위로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을 시험에 들게 하려고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데리고 찾아옵니다.

그들은 여인을 한가운데 세우고 묻습니다. 모세는 간음한 여인의 경우 돌을 던져 죽이라고 명령했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하십니다.

탈출 31,18을 보면 하느님께서 당신 손가락으로 돌 판에 율법을 새겨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는 하느님이 써주신 돌 판을 가져다준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시는데,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직접 쓰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 자리에 계신 분임을, 하느님의 아들로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임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무엇인가를 쓰셨다는 말을 세 번에 걸쳐 강조해서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계속 다그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 하나씩 떠나고 여인과 예수님만 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겠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이 대목에서 예수님이 써주시는 가르침은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며, 죄인을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하고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파견되신 분이라는 것 말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율법을 어기는 죄인을 모조리 없애고 벌주기 위함이 아니라, 경계하고 경계하여 하느님만을 참으로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을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자기가 생각한 바에 따라, 자기와 반대하는 이를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이용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여인이 아무런 죄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여인은 분명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덮기 위해, 예수님을 모함하기 위해 그 여인의 죄를 이용하려 들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죄를 통해 모두의 죄가 드러나게 만드십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스스로의 죄를 자각하게 만드십니다.

자비의 희년에 지내는 사순시기가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다시 한 번 남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고백합시다. 그리고 교황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입고 있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이웃에게도 자비의 얼굴을 드러내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가 자비의 얼굴을 지니게 될 때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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