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3028호 2017.01.15 18면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예수님 위에 머무르신 성령

연중 제2주일(요한 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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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내려와 머무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도 이 점을 이야기하는데, 세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 이를 체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요한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도 그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합니다. 성령이 예수님 위에 내려와 머무는 사건이 예수님의 개인적 체험이 아니라 공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성령이 내려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위에 머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께서는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모든 활동과 함께 하십니다(루카 4,1.14; 10,21). 예수님이 잉태되실 때에도 그분과 함께 하셨고(루카 1,35),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예수님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성령을 제자들에게 부어주시어 제자들이 당신의 사명을 지속해 나가도록 명하십니다(요한 20,23). 바로 그 성령께서 예수님 위에 머물고 계신 것을 요한이 본 것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사명과 관련해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께 내려오는데, 히브리어로 비둘기를 ‘요나’라고 부릅니다. 

요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래 뱃속에서 사흘을 머물다가 살아난 구약의 예언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요나의 기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밝히시는데(마태 12,38-42), 요나처럼 당신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의 사명을 수행하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예수님 머리 위에 계속 머문다는 것은 예수님의 모든 공생활이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향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요한은 이런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 마지막 날 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모든 맏아들과 맏배가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피로 모든 죄를 씻어 없애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으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피로 세상의 죄는 용서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종인 메시아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음을 맞게 된다는 주제는 이미 이사야서의 수난받는 하느님의 종(이사 52,13-53,12)의 노래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 메시아이심을 증언합니다. 물론, 요한도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그런 사명을 가지신 분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그분 위에 내려와 머무는 것을 본 뒤 즉시 예수님께서 수난받는 주님의 종으로 모든 이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될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알아본 것입니다. 아람어로 ‘양’과 ‘종’이 동음이의어라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수님께서 쓰시던 아람어로 탈리아라는 말은 ‘종’이라는 뜻도 있지만 ‘양’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람어로 하느님의 종을 하느님의 양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 20,23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양, 하느님의 종으로서 당신의 사명이 바로 우리의 사명임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당신의 숨을 불어 넣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수행해야 할 사명 또한 예수님의 사명과 동일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세상의 죄를 치워 없애는 일, 곧 하느님의 종으로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는 일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중시기를 시작하는 지금 다시 한번 우리가 받은 사명을 기억하며 성령과 함께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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