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평화신문 
게재 일자 2015. 11. 22발행 [1340호] 
[나의 묵주이야기] 147. 도보순례를 통한 묵주기도 제2탄의 시작
 
오지영 젬마(부산교구 반여본당)

처음 묵주기도를 접하게 된 때는 중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친구 언니가 레지오를 못하게 되면서 친구와 나를 입단시켰다. 레지오가 뭔지도 모르고 하게 된 단원 생활에서 배운 것은 묵주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아 세례를 받아 착실하게 미사 참례를 하는 정도였지 묵주기도는 해보지 않았다. 엄마가 드리는 묵주기도 소리를 들었을 뿐이고 주모경만 바치던 때였다. 성모님을 통해서 하느님께 전달되는 기도라는 설명을 들으며 나의 묵주기도는 시작됐다.

손가락으로 한알 한알 묵주 알을 세며 묵주기도 5단을 바치고 나면 나도 모르게 기쁨이 충만하게 됨을 느꼈다. 그렇게 이어진 묵주기도는 나에게 희망을 주었고 사춘기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특별하게 하느님 은총을 체험한 적은 없었지만, 매 순간 삶이 크나큰 은총이었음은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묵주기도를 하면서 체험이 많아 신앙이 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절망감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부산교구에서 이정식 요한과 양재현 마르티노 순교자의 시복시성을 위한 도보 순례가 있었다. 수영 장대골 성지에서 오륜대 순교자 성지까지 3시간 30분을 걷는 순례였다. 더워도, 추워도, 비가 와도 걸어야 하는 도보 순례길은 오로지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길이었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길을 걸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많은 묵주기도를 했던가. 한 자리에서 20단을 바쳐본 적 없는 나에게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은 영광의 길이었다. 피 흘린 그분들의 길을 우리는 편안하게 걷고 있지만, 예수님 안에서, 성모님 안에서 그분들의 시신을 매고 가는 아픔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건성으로 묵주기도를 했던 날을 반성하며 묵주 한 알 한 알을 돌렸다. 도보순례 중에 계속 비가 내린 적이 있다. 온몸이 비에 흠뻑 젖었고 오륜대 순교자 성지에 도착했을 때는 비와 땀이 범벅됐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의자가 축축했다.

이렇게 간절하게 묵주기도를 한 덕분인가. 드디어 우리는 시복의 기쁨을 안게 됐다. 지난해 서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직접 가까이서 뵙는 영광을 안게 된 것도 하느님 은총이었다.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묵주기도의 힘은 우리 모두의 바람을 시복으로 확인시켜 줬다. 6년간의 결실이었다. 시복식을 통해 내가 묵주기도로 함께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줄줄 흐르는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환희의 신비를 바치면서 예수님 태어나심을 기뻐했고, 빛의 신비를 바치면서 예수님의 공생활에 동참했다. 고통의 신비를 바치면서 십자가의 수난을 가슴에 되새기며 묵주 알을 돌렸고, 영광의 신비를 바치면서는 성모님을 통해 감사함을 느꼈다. 묵주기도는 신비다. 알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신비다. 항상 믿음을 가지고 기도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묵주기도의 신비!

이제는 김범우 토마스 시복을 위해 묵주기도 도보순례를 한다. 삼랑진역에서 김범우 토마스 묘소까지 이어지는 순례의 길이다. 묵주기도 2탄이 새롭게 시작됐다. 시복되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