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982호 2016.02.21. 18면 

[복음생각] 하느님의 의로움 / 염철호 신부

사순 제2주일(루카 9,28ㄴ-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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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동에서는 임금들 간에 서로 계약을 맺을 때 희생 제물을 가져와 반으로 쪼갠 뒤 계약 조건을 말하며 쪼개어진 제물 사이로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둘 가운데 누구라도 계약을 어기면 이런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맹세했다고 합니다. 오늘 1독서에서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는 장면도 이와 유사한데, 아브라함이 짐승들을 주님께 가져와 반으로 자른 뒤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습니다. 그리고는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갑니다. 여기서 화덕과 횃불은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화덕과 횃불 모습으로 쪼개 놓은 짐승 사이를 지나가면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점이 발견됩니다. 계약 당사자인 아브라함이 갈라진 짐승들 사이를 지나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쪼개어진 짐승 사이를 지나가면서 계약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보면 창세기 15장은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라기보다 하느님이 일방적인 약속, 곧 하느님의 언약에 관한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와 계약을 맺으시는 것도 아브라함이 청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 편에서 선택하시고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계약에 당신 스스로를 옭아매시는 하느님. 여기서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마지막까지 책임지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오늘 2독서에서는 이런 하느님의 모습이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모두는 당신 아드님의 피로 계약을 맺게 되었고, 그분 덕분에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이루고자 하셨던 하느님의 충실하심 덕분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에 충실하신 모습을 두고 하느님의 의로움이라고 표현합니다.

대개 세상의 의로움은 착한 일 하면 상주고, 나쁜 일 하면 벌주는 그런 의로움이지만, 하느님의 의로움은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에 충실하신 것, 곧 우리의 죄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당신 약속을 기필코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충실한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런 하느님이시기에 우리 죄마저도 용서해 주십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니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예수님 덕분에 누리게 될 영광만을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잠들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서는 항상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또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들로서 아버지의 의로움을 본받아서 항상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오늘 복음의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의롭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하느님은 언제나처럼 우리를 기다려 주시고, 우리가 당신처럼 의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을 기억하고, 그분의 의로움에 우리를 내어 맡기며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갑시다. 그러면 2독서가 이야기하듯이 예수님께서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킬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 곧 오늘 복음에서 보았던 그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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