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990호 2016.04.17. 20면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양떼와 착한 목자

부활 제4주일(요한 10,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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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광야에 나가면 베두인족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양떼를 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강한 햇볕에 물도 찾기 힘든 광야에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우물이 광야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우물은 생명, 구원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양치는 목자는 우물이 있는 위치를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목자가 우물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면, 양떼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당신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의 우물인 하느님을 알고 있으며, 당신의 양떼를 그분께로 이끌어 주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양들이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그들을 알고 그들이 당신을 따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도 목자들의 삶의 체험이 잘 녹아 있습니다.

광야의 우물은 그 수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함께 모여 물을 먹이곤 합니다. 이런 모습은 야곱이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나는 장면(창세 29,1-14)과 모세가 우물가에서 미디안 사제의 딸들을 만나는 장면(탈출 2,16-22)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이 함께 양떼에게 물을 먹이다 보면, 양떼가 섞여 어느 목자의 양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양떼들에게 표식을 해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많은 양떼를 일일이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목자들에게는 이 일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신기하게도 양들이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주인이 부르면 그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만약 양떼가 주인의 목소리를 알지 못한다면 양떼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양떼는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당신을 따라 우물물, 곧 생명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이들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거나, 목소리를 알아듣더라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결코 영원한 생명의 물을 마시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당신에게서 양떼를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떼를 늑대나 적들의 손아귀에서 항상 지키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양떼를 버리고 도망치는 나쁜 목자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자신의 양떼를 지키는 참된 목자이십니다. 더 나아가 행여 길을 잃은 양이 있다면 마지막 하나까지 찾아 나서서 데려오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의 양떼 가운데 생명의 물을 마시지 못할 양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양떼를 아끼는 이유는 당신이 남의 양떼를 맡아 기르는 직업적 목자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맡기신, 곧 당신의 소유이신 양떼를 직접 기르는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자신을 하나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맡기신 양떼를 당신의 양떼로 여기며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양떼를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놓으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참된 목자이며,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선한 목자이심을 기억합시다. 아울러 성소주일을 맞아 선하신 예수님을 닮아 진정으로 양떼를 사랑하는 착한 목자들이 많이 태어나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느님의 도움을 간청합시다.


염철호 신부 -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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