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그 소중한 의미

가톨릭부산 2015.10.12 07:11 조회 수 : 211

호수 2257호 2014.01.31 
글쓴이 최석철 스테파노 

피! 그 소중한 의미

최석철 스테파노 / 부산가톨릭대학교 임상병리학과 교수

과거 내가 근무했던 부산 모 병원 흉부외과는 심장 수술의 전문성이 뛰어나기로 국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유수한 곳이다. 심혈관 수술을 시행하기 위해 의학적으로 거의 필수적으로 적용해야 할 처치 기법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심장 수술 동안 환자의 심장과 폐의 기능을 불가피하게 중지시킴에 따른 이를 대신할 인공심폐기 장치의 가동이다. 이 장치는 당시 임상병리사였던 내가 담당했는데 심장 수술 동안 환자의 모든 혈액을 안전하게 순환시켜야 하므로 그 어떤 경우보다 피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병원이나 의료기관에 가서 질병 진단 및 건강검진을 위해 이루어지는 채혈, 아니면 헌혈 또는 수술 시에 이루어지는 수혈 등을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생명에 직결적인 피에 관한 이 모든 생각들은 피의 매우 가치 있고 소중한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현대 의학은 최근 십여 년간의 짧은 시간 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온 결과, 모기 눈물만큼 매우 적은 혈액만으로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특정 사건의 범인을 검거할 수 있게 되었고, 병원 검사실에서도 소량의 혈액만으로 수십 가지의 검사들을 단 몇 분 만에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과거에 이미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다. 물론 신자 중에는 다양한 유형의 신자들이 섞여 있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이마에 인호가 박힌, 세상 그 어떤 생명체보다 거룩하고 귀한 하느님의 자녀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가톨릭 신자인 우리 모두는 ‘피’에 대해 일반적 관점을 배제하고 좀 더 신앙적 관점에서, 지금도 심장을 통해 온몸을 순환하며 생명의 근원이 되는 영양분과 산소를 실어 나르는 ‘피’에 대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구약적 의미에서 피는 모세가 노예 살이 하는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한 ‘파스카(유대인의 대문이나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행위)’적 표징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포도주잔을 들어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 20)라고 하셨다. 그 후 예수님은 본시오 빌라도로부터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채찍질로 인해 무수한 땀과 피를 흘리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당신의 피로 인간을 단죄가 아닌 속량을 해 주셨고, 우리에게 ‘구원과 부활’이라는 선물도 함께 해 주셨기에, 피! 그 한 방울 조차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하랴! 하느님께서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셨으면 수많은 인간, 아니 어쩌면 인류 전체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십자가에 매달리게 할 유다 같은 존재임을 아시면서도 당신을 닮은 모상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어 몸속에 따뜻한 피를 부어 주셨겠는가!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소속된 부산가톨릭대학교 임상병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할 때, 피! 그 소중한 의미를! 그리고 그런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우리 대학에서 인재양성의 한 일원으로 나를 있게 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드린다.
 

번호 호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128 2274호 2014.05.25  ‘가정성화미사’에 다녀와서 김영숙 데레사  103
127 2270호 2014.04.27  24년을 감사하며 장영호, 천귀애 부부  35
126 2267호 2014.04.06  ‘나이듦’에 대해서 한정원 베로니카  66
125 2266호 2014.03.30  부부로 태어난다는 것 하지원 세실리아  53
124 2265호 2014.03.23  CUM 기자단으로서의 1년을 마무리하며 우수연 아녜스  78
123 2263호 2014.03.09  『시복시성 기원 도보 성지 순례 백서』 발간에 부쳐 하창식 프란치스코  132
122 2262호 2014.03.02  진정한 통공(通功) 김숙남 리베라따  31
121 2261호 2014.02.23  아버지의 망토 박정열 발다살  169
120 2260호 2014.02.16  순정공소 100주년 김정렬 신부  110
119 2258호 2014.02.02  무면허 아빠 조대범 요셉  21
» 2257호 2014.01.31  피! 그 소중한 의미 최석철 스테파노  211
117 2256호 2014.01.26  부르심에 감사합니다 남수미 요세피나  104
116 2255호 2014.01.19  실천지침-복음화의 원동력인 가정복음화 해설 ③ 선교사목국  55
115 2254호 2014.01.12  실천지침-복음화의 원동력인 가정복음화 해설 ② 선교사목국  60
114 2253호 2014.01.05  실천지침-복음화의 원동력인 가정복음화 해설 ① 선교사목국  43
113 2252호 2014.01.01  새 사제 다짐·감사 인사 전산홍보국  118
112 2242호 2013.11.03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 유희정 이레네  110
111 2234호 2013.09.15  ‘혼인강좌’, 성가정으로 가는 길 성아람 마리아  134
110 2231호 2013.08.25  새로운 여정의 시작 ‘ME주말’ 정은주 최진만 부부  49
109 2230호 2013.08.18  나에게 신앙은? 김정호 요셉  59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