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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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구 감천동은 그동안 서구에 소속되었으나 1975년 10월 1일 부산시 직할
사하출장소로 독립하였으며 1983년 12월 15일 사하구로 승격하였다.

 

감천동은 천마산, 아미산, 금티산이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고 감천항은
두송반도가 길게 뻗어 내려 감천만이 깊숙히 들어가
천연의 항구가 된 마을이다.

따라서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입지조건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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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감천은 천마산성과 서평포진 사이에 깊이 들어간 감천만에

위치한 요지로 바다에 출입하는 배와 사람들을 검문하는
수문과 공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한때는 괴정과 함께 목마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이 주둔하였고, 그 건물은 해방 후 국방 경비대에서
쓰다가 6.25동란 때에는 영국군 부대가 사용하였다.

감천만의 동쪽 해변에는 재래의 작은 어촌이 있어 감천의 원래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북쪽 해변은 해수욕장으로 쓰이는 경치 좋은 곳이었다.

감천 해수욕장은 규모가 좁고 사장이 없으나 큰 소나무들이 줄서있고 깨끝한

자갈밭이 깔린 아담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그러나 1962년 이곳에 부산화력발전소 건설을 시작하면서 해수욕장과 그앞에

있는 용두섬이란 작은 섬이 없어지면서 감천의 모습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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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 2동에는 태극을 받들며 도를 닦아 성인이 된다는 신흥종교인 태극도
믿는 사람들이 사천여명이 모여 집단촌을 이루어 1958년 감천 2동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 신자들이 이곳에 그들의 신앙촌을 만든 것은 6.25 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온 전국의 신자들이 교주를 중심으로 하여 모여들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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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성당 소(알로이시오 슈활츠) 주임신부는 마리아 수녀회 설립자로

빈첸시오 성인과 같은 정신(봉사.자선)으로 살아온 사제로 아미동 산 19번지

일대에 해방후 일본에서 귀국한 사람, 6.25 피난민과 오갈데 없는

가난한이들이 일본인 공동묘지와 산비탈에 루핑판자집을 짖고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가족이 병이 나도 돈이 없어 제때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고 지역 주민을 위한 구호소 진료소

설치를 절감햇다.

 

196734일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마리아수녀회의 명의로 진료소 신축을

위해 현 성당을 기준으로 아미동 지역 289.7평 감천동지역 679평을

매입하여 진료소 건축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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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917일 부산교구 초대 최재선(요한)주교와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함께 아미동. 감천동의 가난한 지역민을 위한 천주교 의원”(.천국도서관)

의 축성식을 가졌으며, 이어 1967920일 부산시장. 서부경찰서장.

지역 주민등 각계 인사와 함께 천주교 의원개원식을 가졌다.

 

개업당시 천주교의원 일기에는

아미동 마리아회 의원은 마리아회의 의원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의원이다.

가난한 이는 항상 우리들의 주인이므로 우리 마리아회 회원들은

가난하고 병들고 불우한 이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친절과 관용으로

그들을 영육 모든 면에서 정성껏 돌보고 봉사할 의무를 천주님께 받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진료의사로 최중묵(도밍고)박사와 마리아 수녀회의 수녀, 간호사가

매일 이곳에 와서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1967723일 최중묵 박사가

장림동 행려 구호소로 옮겨 갈때까지 계속 되었다.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천주교의원을 시작으로 이 지역에서 가난하고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사업과 아울러 사목을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뜻을 같이할 사제를 미국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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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신축하고 학교명을 아미 고등공민학교’(중학과정)로 하였다.

이때 뜻을 함께 할 신부로 아일랜드계 30대 중반의 미국 택사스주

휴스턴교구 소속 고야고버(james l. golasinski)신부가 태평양을

건너 이곳으로 왔다.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아미고등공민학교를 1968218일 설립하고

동년 125일 인가를 받아 초대 교장에 고야고버 신부를 임명했다.

가난으로 인해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지역 주민들을 성당으로 인도할 수 있는 전교사업을 위해 두분

신부가 의논하여 학교 두 칸을 수업시간에는 교실로, 주일 미사에는

성전으로 바꿔가며 고야고버 신부가 미사를 봉헌하게 된 것이

본당의 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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