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소개
     - 아 미 성 당 연  혁 -
1967년  03월04일  소알로시오 슈왈츠 신부 마리아 수녀회의 명의로 구호진료소 개설
1968년  02월18일  아미고등공민학교 설립과 교내 교리실 2칸을 성당으로 개조사용
                        학교장 겸 초대 주임 고야고보 신부 부임
1969년  08월10일  아미성당으로 인가
1975년  07월17일  부산교구 제2대 교구장 이갑수(가브리엘)주교 착좌
1978년  12월31일  아미 고등공민학교 폐교
1979년  02월16일  제2대 주임 표중관(베드로) 신부 부임
1979년  12월        이갑수(가브리엘)주교 주선으로  교황청 대사방문
                         제4대 교황대사 루치아노 안젤로니(Luciano Angeloni)대주교
                         재임기간(1978.11.25.~1982.08.21.)
1980년  10월08일  제3대 주임 오남주(프리모) 신부 부임
1981년  02월19일  4대 주임 한영일(니콜라오) 신부 부임
1981년  04월01일  구호진료소 사제관으로 개축
1984년  02월07일  제5대 주임 김태호(알로시오) 신부 부임
1985년  01월18일  제6대 주임 진만복(제랄드)신부(성 골롬바 외방선교회) 부임
1985년  04월        제7대 본당 주임 기디모테오 신부(성 골롬바 외방선교회)부임
1986년  03월01일  제8대 본당 주임 조요셉 신부(성 골롬바 외방선교회)부임
1986년  03월        본당 수녀원 개원(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초대분원장 김루갈다 수녀, 김알로이시오 수녀
1987년  10월24일  성모동굴 축성식
1988년  02월        제9대 주임 노경심(다니엘)신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부임
1988년  04월17일  제10대 주임 안현철(안토니오)신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부임
1992년  03월12일  안현철(안토니오)주임신부 25주년 은경축 행사,이갑수(가브리엘)주교참석
1994년  01월24일  제11대 주임 장자호(요한가롤로)신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부임
1995년  02월17일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위탁 관리하던 아미본당을 
                         신자들의 뜻을 받아들여 부산교구 사목으로 환원
                         제12대 주임 백성환(안드레아)신부 부임
1996년  02월14일  제13대 주임 왕영수(프란치스코)신부 부임,서대신성당 주임신부 겸임
                         차성현(암브로시오)신부 보좌신부로 부임(실질적으로 본당신부활동)
1998년  02월11일  제14대 주임 차성현(암브로시오)신부 발령
1999년  01월30일  본당 출신 박갑조(요한세례자)부제, 사제 서품식
1999년  02월19일  제15대 주임 손원모(요한크리소스토모)신부 부임
1999년  08월28일  부산교구 제3대 교구장 정명조(아우구스티노)주교 착좌
1999년  10월10일  본당 설립 30주년 기념행사 및 30년사 출판
2002년  01월25일  제16대 주임 박성태(마태오)신부 부임
2002년  09월17일  본당출신 임동욱(안셀모)부제,사제서품식(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2002년  12월09일  본당출신 황경애(수산나)수녀 종신  
                         서원식(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2004년  06월24일  본당출신 강주현(사도요한)부제 사제서품식(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2004년  10월07일  제17대 주임 이재만(마르코)신부 부임
2005년  04월08일  제18대  주임 강병규(야고보)신부 부임
2007년  12월16일  부산교구 제4대 교구장 황철수(바오로)주교 착좌
2008년  10월10일  제19대 주임 김두유(요한세례자)신부 부임
2012년  01월06일  제20대 주임 이상일(타데오)신부 부임
2012년  03월18일  제21대 주임 권경령(베드로)신부 부임
2012년  12월        본당 수녀원(미리내 성모성심수녀) 철수
2014년  10월19일  본당설립 제45주년 본당의 날 한마당 잔치
2014년  12월07일  본당 신학생 남보현(사도요한) 한국외방 선교회 입학
2015년  10월09일  제22대 주임 서정웅(베드로)신부 부임
2015년  12월24일  본당 천국카페 축성식
2016년  08월07일  본당 천국쉼터 축성식
2017년  03월        본당 신학생 이창민(요한비안네) 부산가톨릭신학대학 입학
2017년  04월        본당 장애인화장실 및 천국도서관 및 성모동굴 하트 십자가 완공
2018년  08월        부산교구 본당순례 14명 완주
2019년  05월02일  본당 구 사제관 천국 갤러리 보수 작업
2019년  05월26일  본당 설립 50주년 행사 전신자 성지순례
2019년  06월04일  부산교구 제5대 교구장 손삼석(요셉)주교 착좌
2019년  06월08일  본당설립 50주년 기념 교구장 손삼석(요셉)주교 방문
2019년  10월04일  제23대 주임 배상복(이냐시오)신부 부임
2020년  03월02일  본당 신학생 배시현(사무엘)대구가톨릭대학교 입학
2022년  08월18일  제24대 주임 장세명(안드레아)신부 부임
2023년  03월02일  본당 신학생 손형준(마르티노))대구가톨릭대학교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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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구 감천동은 그동안 서구에 소속되었으나 1975년 10월 1일 부산시 직할
사하출장소로 독립하였으며 1983년 12월 15일 사하구로 승격하였다.

 

감천동은 천마산, 아미산, 금티산이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고 감천항은
두송반도가 길게 뻗어 내려 감천만이 깊숙히 들어가
천연의 항구가 된 마을이다.

따라서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입지조건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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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감천은 천마산성과 서평포진 사이에 깊이 들어간 감천만에

위치한 요지로 바다에 출입하는 배와 사람들을 검문하는
수문과 공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한때는 괴정과 함께 목마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이 주둔하였고, 그 건물은 해방 후 국방 경비대에서
쓰다가 6.25동란 때에는 영국군 부대가 사용하였다.

감천만의 동쪽 해변에는 재래의 작은 어촌이 있어 감천의 원래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북쪽 해변은 해수욕장으로 쓰이는 경치 좋은 곳이었다.

감천 해수욕장은 규모가 좁고 사장이 없으나 큰 소나무들이 줄서있고 깨끝한

자갈밭이 깔린 아담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그러나 1962년 이곳에 부산화력발전소 건설을 시작하면서 해수욕장과 그앞에

있는 용두섬이란 작은 섬이 없어지면서 감천의 모습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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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 2동에는 태극을 받들며 도를 닦아 성인이 된다는 신흥종교인 태극도
믿는 사람들이 사천여명이 모여 집단촌을 이루어 1958년 감천 2동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 신자들이 이곳에 그들의 신앙촌을 만든 것은 6.25 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온 전국의 신자들이 교주를 중심으로 하여 모여들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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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성당 소(알로이시오 슈활츠) 주임신부는 마리아 수녀회 설립자로

빈첸시오 성인과 같은 정신(봉사.자선)으로 살아온 사제로 아미동 산 19번지

일대에 해방후 일본에서 귀국한 사람, 6.25 피난민과 오갈데 없는

가난한이들이 일본인 공동묘지와 산비탈에 루핑판자집을 짖고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가족이 병이 나도 돈이 없어 제때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고 지역 주민을 위한 구호소 진료소

설치를 절감햇다.

 

196734일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마리아수녀회의 명의로 진료소 신축을

위해 현 성당을 기준으로 아미동 지역 289.7평 감천동지역 679평을

매입하여 진료소 건축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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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917일 부산교구 초대 최재선(요한)주교와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함께 아미동. 감천동의 가난한 지역민을 위한 천주교 의원”(.천국도서관)

의 축성식을 가졌으며, 이어 1967920일 부산시장. 서부경찰서장.

지역 주민등 각계 인사와 함께 천주교 의원개원식을 가졌다.

 

개업당시 천주교의원 일기에는

아미동 마리아회 의원은 마리아회의 의원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의원이다.

가난한 이는 항상 우리들의 주인이므로 우리 마리아회 회원들은

가난하고 병들고 불우한 이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친절과 관용으로

그들을 영육 모든 면에서 정성껏 돌보고 봉사할 의무를 천주님께 받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진료의사로 최중묵(도밍고)박사와 마리아 수녀회의 수녀, 간호사가

매일 이곳에 와서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1967723일 최중묵 박사가

장림동 행려 구호소로 옮겨 갈때까지 계속 되었다.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천주교의원을 시작으로 이 지역에서 가난하고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사업과 아울러 사목을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뜻을 같이할 사제를 미국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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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신축하고 학교명을 아미 고등공민학교’(중학과정)로 하였다.

이때 뜻을 함께 할 신부로 아일랜드계 30대 중반의 미국 택사스주

휴스턴교구 소속 고야고버(james l. golasinski)신부가 태평양을

건너 이곳으로 왔다.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아미고등공민학교를 1968218일 설립하고

동년 125일 인가를 받아 초대 교장에 고야고버 신부를 임명했다.

가난으로 인해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지역 주민들을 성당으로 인도할 수 있는 전교사업을 위해 두분

신부가 의논하여 학교 두 칸을 수업시간에는 교실로, 주일 미사에는

성전으로 바꿔가며 고야고버 신부가 미사를 봉헌하게 된 것이

본당의 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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