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43호 2019.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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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진영 신부 |
나를 예쁘게 살게 해 주신 분들
서진영 신부 / 대양전자통신고등학교 교목
노오란 콧물이 불안한 듯 매달려 오르락내리락할 때 할머니의 소매는 어린 손주의 콧등을 훔치며 말합니다. “흥해라, 흥” 어색하고 조금 부끄러운 듯 어린 숨결이 딴에 제법 큰 소리를 내며 ‘흥’이라 힘을 냈을 때, 묻어 나오는 콧물은 더러운 무엇이 아니라 할머니의 손주 사랑이겠지요. 과장된 빈티지 사진처럼 꾸민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오래되고 훈훈한 기억일 겁니다.
교회의 전례 안에도 이런 훈훈한 기억이 있습니다. 만다툼(mandatum) 예식입니다. 계명을 뜻하는 만다툼이 세족례 예식을 뜻하게 된 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며 하신 주님의 말씀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mandatum novum)을 준다”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극구 사양하는 제자 베드로의 발을 씻겨 사랑과 겸손을 알게 하신 주님의 속 깊은 마음이 기억에 남아 아름다운 전례가 되었습니다. 부활의 환호송이 울려 퍼진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성 목요일 만찬 때의 주님 모습을 다시 기억해 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주님은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제자의 발을 씻기시면서 말입니다. 그 씻김은 지금 보이는 너의 허물과 부족함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서로 위해 주라는 애정 어린 충고로, 우리를 더 나은 사람, 더 영광된 사람이 되게 인도하십니다. 잠시 지날 세상에서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더 좋을지에 관한 생생한 가르침입니다. 사랑으로 영광스럽게 되라고 말입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 하셨지요. 어떻게 보아도 예쁜 모습이지만, 더 좋을 수 있도록, 어린 손주의 입가에 묻은 짜장 자국을 침 묻힌 옷자락으로 닦아주는 모습을 두고 위생적이지 않다, 지저분하다고 타박 놓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또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겠지요. 이 사랑을 이러한 관용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일 때 그들을 보고 서로 저 사람들은 정말 서로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되겠지요. 아마 우리는 이렇게 해서 영광스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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