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과 나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보도국 부장 fogtak@naver.com
한 공중파 TV에서 복면을 쓴 가수들이 노래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이름 알려진 가수들이 탈락하기도 하고 아이돌이나 개그맨이 감동의 노래 실력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겉모습을 복면에 숨기고 노래 실력만으로 대결을 펼친다는 점에서 편견을 깨는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TV를 보면서“세상 사는 누구나 가면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의 세상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불편한 가면들이 있습니다. 회사나 학교 같은 조직생활에선 내 생각과 다른 조직의 논리를 따라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눌러가며 거짓 웃음을 보여야 합니다. 조직에서의 위치 때문에 마음에 없는 악역을 맡기도 합니다. 밥벌이를 위해서는 때론 부당한 갑과 을의 관계를 참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문제가 심각한 건 본질보다 가면이 더 중요해진 경우입니다. 취업이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사람의 내면보다 외모나 학벌, 집안 같은 스펙의 가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을 받기도 합니다. 자본이 만들어 낸 잉여의 상품들은 화려한 겉포장으로 필요 이상의 소비를 부추깁니다. 익명의 가면에 숨어 악플을 달거나 부당한 비방을 서슴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돈과 권력의 가면으로 자신의 부도덕을 숨기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재벌이나 권력자들은 아예 가면을 세습하려고 애를 씁니다.
시인 윤동주는“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닦아보자.”고 했습니다. 가면이 아니라 참된 나를 만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는 뜻일 겁니다. 세상 살면서 가면 하나쯤 쓰고 산다고 해도 하느님이 주신 본성, 내면의 본질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선 가면을 모두 벗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가면에 신경 쓰느라‘나로서의 나’‘하느님이 주신 나’를 방치하고 살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꽃이 피고 지고 가을벌레가 우는 자연의 순리에 귀 닫고 살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마지막에 마침내 가면을 벗어 던진 내가 진정한 자유를 느끼도록 살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릴 것 하나 없이 투명한 가을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