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 송이조차
윤미순 데레사 / 수필가 jinyn5020@hanmail.net
새벽 2시이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장안사 근처에 있는 연꽃 밭으로 내달렸다. 연꽃이 새벽 서너 시 경이면 밤새 오므렸던 꽃봉오리를 터트리며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캄캄한 밤의 연못은 또 다른 생명체들의 치열한 삶의 각축장이었다. 온갖 소리들로 도무지 연꽃이 소리를 낸들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어떻게 하면 그 소릴 들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연꽃 밭 도랑 사이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들과 하나가 되도록 숨을 죽이고 더욱더 그들 소리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노력했다. 하나하나의 소리에 귀를 모았다.
‘아, 이런 소리도 있구나… 너는 뭐지? 또 이 소리는? 너는 누구일까? 음… 너의 소리는 별로 이쁘지가 않구나. 너의 소리는 짧지만 꽤 또렷하구나.’그렇게 하나씩 친구가 되어 가고 있을 때였다. 신문에서는 연꽃이 피는 소리가“퍽”하고 난다고 했는데, 나의 귀에“푝!”하는 소리가 살짝살짝 들려왔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들었던 소리 중 처음 듣는 소리였다. 대체로 풀벌레 소리들은‘쓰르르르~’처럼 뒤에 여운을 남겼다. 근데 이 소리는 아주 간단히‘푝’하는 소리로 끝났다. 하늘에 총총 떠 있던 별들이 서서히 빛을 잃어가며 새벽의 낮은 여명이 산등성이를 드러내 주고 있었다. 네 시를 지나며 그“푝!”소리는 더욱 잦아졌다.
아! 연꽃의 심장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이거였구나!
아, 태양의 뜨거움을 견디고 하루의 생명을 더 견디고자 꽃 한 송이조차 이렇게 노력을 하는구나.
나는 힘들면 힘들다고 하느님께 마구마구 대든다. 저에게 어찌 이러십니까? 이런 말은 기본이다. 성체 앞에서 나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제풀에 제가 꺾이듯 풀 없이 돌아 나오며 던지듯 한마디 한다. 당신이 책임지라고.
심장이 뜯기듯 신음을 토해내며 하느님의 뜨거움을 향하여 그 하루하루를 절실히 바랐던 적이 몇 번이나 되었었는가. 당신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 더 많은 소리에 집중해야 했다. 성인 성녀들과 순교자들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가. 그분들의 삶이, 말씀으로도 모자라 피까지 흘리며 하느님을 증거했지 않는가. 말 못하는 식물조차 제게 주어진 생명을 하루라도 더 꽃피우고자 저렇게 심장 뜯기는 듯한 소리를 내며 절절한 묵상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느님께선 나의 소리 하나하나에 저렇듯 귀를 기울이며 하루를 열어주신다는 것을 아는데 정작 나는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자아가 이기심과 욕심으로 선함을 죽이고 있기 때문임을 다시 느낀다.
아, 그분의 소리가 새벽을 깨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