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산다는 것
지은주 아델라 / 노동사목
대학전공이 일본어였던 나는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나는 가족도 친구도 없는 생활을 경험했다. 마음이 외로운 것은 물론이고, 몸이 아플 때는 병원비가 너무 비싸 돈 아낀다고 병원도 못 가고 혼자 끙끙 앓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곤란했던 것은 음식이었다. 워낙 입맛이 토종이었던 나는 김치를 못 먹으니 견딜 수 없었다. 사서 먹기엔 너무 비싸 대충 재료를 장만해 김치를 담가 먹었다.
내가 사는 동네엔 작은 채소가게가 있었는데 주인이 양심적이고 좋은 사람이었다. 무가 새로 들어온 날 가게에 가면“싱싱한 무, 오늘 왔습니다. 250엔”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음날 가면“어제 온 무 200엔”그 다음날에 그냥“150엔”이라고 적혀 있고 하루 이틀 더 지나 가보면“무 무료로 드립니다. 필요하신 분은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가져오고 싶은데 부끄러워 망설이고 있는 내게 조용히 와서“유학생이죠? 괜찮으니 필요하면 다 들고 가도 좋아요.”라고 했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무 두세 개를 들고 와서 깍두기를 담가 먹었다. 보통 신선도가 떨어지는 채소를 파는 건 상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거라 그냥 덤으로 손님에게 주는 것이라 했다. 그 후로 나는 가게의 공짜 단골이 되었다. 내가 가게에 나타나면 다가와서 다른 손님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오늘은 당근이 무척 싸다든가 오이가 무료라든가 알려주시곤 했다. 그때 일본에서의 한국인은 지금 한국에 와 있는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대우를 받을 때와 같은지라 채소가게 주인의 자상함과 친절은 큰 감동이고 힘이 되었다.
노동사목에서 일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미사, 행사를 지원하는 많은 봉사자를 만난다. 바쁜데도 시간을 내어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상담이나 통역, 의료봉사를 하는 그들에게서 그 옛날 일본 채소가게의 주인 얼굴을 본다. 되돌려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낯선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과 환대야말로 참다운 것이다. 성경에서도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다고 나와 있지 않은가? 남들에게 내가 친절한 사람이란걸 보이기 위해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베푸는 친절과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묵상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