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되돌아보며
최순덕 세실리아 / 수필가 redrose1956@hanmail.net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나라를 친히 방문하셨던 은총의 8월이었다. 한밤에 출발하는 대절 버스를 타고 새우잠을 자면서 주먹밥 하나에도 군소리 없이 먼 길을 달려갔었다. 그때만큼 가톨릭 신자인 것이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일 년 전 오늘, 가슴 뜨거웠던 그날을 되돌아본다.
역사적인 행사에 직접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격스러웠던가. 더운 여름날에 비좁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림에 지쳐있을 때 나의 인내심을 지탱해준 대형 스크린의 영상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시복 대상자인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의 일생과 업적에 대한 영상이었다. 당대의 엄격한 사회구조 속에서 제사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장례를 천주교 예절에 따름으로써 뿌리 깊은 유교문화의 관습에 정면으로 맞선 복자 윤지충 바오로.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 재산은 물론 모든 특권과 명예를 포기하고 결국에는 목숨까지도 내놓은 굳건한 믿음 앞에 아찔한 전율을 느꼈다. 나 같으면 골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순교자들이 피로써 지켜온 믿음의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자문하면서 종교의 자유가 보편화된 호시절에 너무 안일하고 나태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교황님께서는 어린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다. 나도 요즘 들어 작은 것들이 한없이 귀엽고 예뻐 보인다. 딱 그만큼의 시각으로 교황님도 어쩔 수 없는 할아버지로 보였다. 멀리 있는 아이에게도 팔을 뻗어 어루만지고 축복해 주시는 것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새삼 떠올랐다. 아이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약자가 아닌가. 약자를 보호하고 약자를 위해 기도하고 약자를 위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함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신 교황님. 그 인자하신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일 년 동안 교황님이 던져주신 과제를 얼마나 잘 이행하였을까. 돌아보니 제대로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작은 고통과 희생도 이리저리 따지고 재기 예사고, 자식된 도리로써 부모님 모시는 일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마지못해 하면서, 또 생색을 앞세우고, 용서에 더디고, 작심삼일로 끝나는 선행과 급할 때만 하는 기도는 여전하다. 하지만 이런 나약함마저도 그저 사랑해 주시는 주님과 성모님이 계시지 않는가.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교황님의 과제를 실천하고 있을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나 또한 그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가슴 뜨거웠던 순간을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