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40호 2015.08.09 
글쓴이 김기영 신부 

사랑은 내 님 지키는 방파제 되어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 gentium92@yahoo.co.kr

순례 중에 60대 중반의 일본인 교우 부부를 만나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형제님을 보아하니 구릿빛 얼굴에 다부진 체격, 굵은 힘줄이 선명하다. 한눈에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시는 분처럼 보였다. 반대로 자매님은 다소곳하게 앉아서 미소만 짓고 있는 것을 보니 전형적인 주부였다. 

“교우가 적은 일본에서 그것도 부부가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니 참 보기가 좋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형제님 말씀이“저는 이 사람 없었으면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남편은 오랫동안 교직 생활을 해왔는데, 젊은 시절 학생 7명을 데리고 섬으로 캠핑을 간 적이 있었단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학생 중 하나가 그만 물에 떠내려가서 익사한 사고가 나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형제님은 정신적인 상처와 심한 자책감, 무기력증에 빠져서 거의 폐인처럼 생활을 해왔단다. 하루 종일 멍하니,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듯,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생활을 거의 6년 동안이나 해왔다는 것이다. 그런 자신을 지금의 아내가 한결같이 보살펴주었고, 그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잠시 자매님께 눈을 돌리니 말없이 미소만 짓는다. 그러더니 자신 역시 잃어버린 남편을 되찾기 위해서 주님께 매달리고, 또 매달렸단다. 두 부부의 가정에 밀려든 엄청난 고통의 파도 앞에서도 주님만이 자신을 붙들어주는 갯바위였단다. 그 바위에 신앙이란 밧줄로 자신을 칭칭 옭아매고, 인내라는 방파제로써 매일 삼킬 듯이 밀려오는 남편의 우울증과 무기력증이란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부부가 함께 ME(메리지 엔카운터)멤버로서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은총의 식탁에 함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 삶에 이런 고통이 찾아오는지 우리로서는 이유를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그 고통을 통해 우리를 단련케 하시고, 성장시키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칠흑 같은 밤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그들을 빛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우리를 도구로 쓰신다는 것이다. 지나간 삶의 고통보다 더 강한 주님의 부활과 현존을 몸으로 체험케 하고, 현대판 사도로 파견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이 또한, 또 다른 당신의 제자로 살아가게끔 이끌어 주신다. 

혹시, 독자 중에 지금 알 수 없는 큰 고통 중에 계신 분이 있다면, 이 부부들이 체험한 하느님 안에서 위로와 격려를 발견하고, 다시 일어나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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