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김검회 엘리사벳 /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eli70@hanmail.net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불편하게 느껴지는 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무심결에 쓰는“그것은 틀리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조심스러워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그 말에는‘너의 생각은 틀리다(오류가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인데, 문제의 오답이나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생각의 차이, 다시 말해‘나의 생각은 너와 다르다’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틀렸다’고 습관처럼 말합니다. 이때 쉽게 감정이 상하거나 상처를 받기도 하고 때론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불혹’을 넘기면 주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를 떠나서 사십 년의 세월 동안 정립된 자신의 가치관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월의 깊이만큼 경험에 따른 지혜가 생겨나고, 주관이 뚜렷해져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반면, 내 뜻과 다른 상대방이 약자이거나 나이가 어린 경우에는‘내 뜻이 옳으니 따르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 생각이‘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은 하지 않습니다.
‘인권’에 대해서 공부하기 전에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태어나고 살아있는 것 자체로 존엄하며, 그 누구(개인이나 국가 권력으로 부터도)의 강요나 속박으로 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는 비록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온전한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상대방 안에 머무르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존중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정치·경제·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신앙의 표현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비판하거나,‘갑’과‘을’의 관계라고 해서 강자인‘갑’의 기준에 맞추다 보면 어느새 다양성은 사라지고 자유마저 빼앗깁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의 차이와 영향을 미친 인물이 다르니 사회적 갈등을 해석하는 법도 다릅니다.
하지만 꼭 기억했으면 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는 사회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성공과 효율적 가치보다 복음의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먼저 끌어안는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의‘다름’에 속앓이를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하느님의 섬세함과 다양한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