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위한 기도
박주영 첼레스티노 / 조선일보 부산취재본부 본부장 park21@chosun.com
‘홍보 주일’입니다.‘홍보 주일’의 설정은 아마도 사회의 주요 기구, 체제가 된 매스컴, 언론 등의 올바른 이해와 활용을 위해서 일 듯합니다. 이맘때쯤이면 언론종사자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무원연금법, 성완종 리스트 등에서부터 학군단 한자시험 부정, 상속재산 노려 아버지를 살해하려 한 남매, 네팔 대지진, 일본 하코네 화산 폭발 위험….
요즘 언론에 비치는 세상은 참 험하고 복잡하고 무섭습니다. 신문, 방송 등을 접하는 제 마음은 우울하고 칙칙하고 답답합니다.“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와글와글합니다. 생각 끝에 마음에 드리워지는 그늘은 기자 초년병 시절보다 더 깊어지고 심해진 듯합니다.
특히, 인터넷, SNS 등 디지털 세상으로 접어들면서 더 그렇습니다. 언론이, 매스컴이 이런 세상을 부추기는 게 아닌지, 세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이런 것까지 보도해야 하나?”“이렇게 극단적 주장을 해야 하는 건가?”엽기적이고 충격적인 그리고 선정적인 뉴스와 막말들이 난무합니다. 세상이 마치 고장 난 폭주 기관차나 이리저리 마구 날뛰는 광마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언론들은 왜 이럴까요? 아마도 자기만 옳다고 여기고, 독자나 시청자를 언론의 주장에 설득당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게다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어 언론 매체가 크게 늘면서 만인 대 만인의 무한 경쟁 상태에 빠져 있다는 상황도 한몫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해법은 뭘까 고민해봅니다. 독자나 시청자를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공감하며 같이 길을 가는 주체로 보는 관점의 이동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언론 자신의 생각으로 바꾸고 세뇌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일치하게 하는 것에 중심을 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작년 한국 방문에서“삶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 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치를 이루려면 인간의 욕망, 이념이 아니라 하느님 현존 안에 있어야,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씀일 겁니다. 사람들의 평화, 사랑을 향한 일치에 봉사하는 언론을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