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흰 손
김양희 레지나 / 수필가 supil99@hanmail.net
수녀님이 찾는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임종을 앞두고 인줄은 알지 못했다. 연락 못하고 지낸 지가 칠팔 년, 아름답고 맑은 풍치 속에서 수도원의 평화로운 노년을 지내고 계신 걸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사는 일이 바빠 잊고 지낸 시간들이 너무 길었음일까. 가는 허리에 검은 수도복이 늘 애련함의 기억과 함께 하던 수녀님의 잔상이 언뜻 스쳐 지났다.
아침 일찍 서둘러 열차에 올랐다. 수녀님의 병실은 5층 호젓한 방에 있었다. 안내하는 수녀님이 조신하게 일러준다. 조용히 병실 문을 열었다. 미동도 없이 누우신 채 수녀님은 흰 이를 드러내며 조금 웃어 주신다. 나도 웃었다.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말이라는 것이 때로는 고통이나 재난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공허한 것이던가. 어제인 듯 수녀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목련처럼 피어나던 삼십 대에 수녀님을 처음 만났다. 그러나 그 목련은 그 때 병든 꽃이었다. 심장이 약한 환자와 병실을 돌보는 약사 수녀로서 우리는 첫 대면을 한 것이다. 경당에서 들리는 십자가의 길 기도“어머님께 청하오니~”하던 그 애절하고 정겨운 곡조에 이끌려 살포시 입원실을 빠져나가 수녀님과 십자가의 길을 함께 바치기도 했다.
수녀님의 가정은 대구 과수원의 외인 집안에서 태어나 세 딸이 모두 수녀가 되고 마침내는 반대하던 부모님마저 신자가 되었으니 하느님이 특별히 택한 가정인지도 모르겠다. 수녀님은 입원실 옆 침대에 열심했던 동정녀 할머니를 안배해주고는 나날이 꽃처럼 내게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수녀님에게서도 그늘이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언뜻언뜻 스치는 인간적인 면모가 수녀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지름길이 되었고, 소속 수도회를 후원한 인연이 오랜 기간 인간적인 친분으로 쌓이기도 했다.
눈을 감은 수녀님의 모습은 애기 같았다. 소화데레사처럼 예수님의 작은 꽃이다. 이불 깃 사이로 수녀님의 작은 손을 만져본다. 손과 손의 교감, 이미 애증이나 칠극(七克)의 고뇌마저 놓아버린 손이다. 나는 새들이 무심히 우짖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다보았다. 그리고는 말없이 병실 문을 나섰다.
그렇게 수녀님이 가신지도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순절에 수녀님을 처음 만났고 가신 것도 부활기간 이었다. 그래선지 해마다 봄이 오면 습관처럼 수녀님의 부활을 떠올리곤 한다. 삶의 고달픔 속에서도 주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는 그분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