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하는 마음을 간직하자.
박주미 마리아막달레나 / 노동사목 바자울 배움터 www.laboroffice.or.kr
한때는 너무도 좋았던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추장스럽거나 불편하거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움을 가지면서 잊으려고 한다.
반대로 답답하고, 억울하고, 서럽고 분노가 치솟아서 죽을 때까지 아니 그 이후 후대들도 잊지 말고 기억하자고 다짐하는 일들이 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환호성을 지르고 환영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불과 며칠 만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들의 무리에 휩싸여 그들도 군중들과 함께 소리 지른다.‘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이럴 수 있을까?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다. 저리어 온다.
내게 물어본다. 살아가면서 환호하던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어떤 경우가 오더라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여야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환호하고 환영하는 마음을 잘 간직할 수 있겠는지? 다른 이들이 며칠 만에 변심하여 모진 말을 하고 난도질하여 씻을 수 없는 아픔의 상처를 내고 끝내 정의와 진리를 처형에 이르게 하였는데 그 무리 속에 있는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군중들의 행위에 동요되지 않고 지켜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례받은 신자로 자랑스럽게 살아야 한다.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고 이웃을 환대, 환영하며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 고통받고 있는 이들과‘함께 살자’고 다짐하고 실천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다.”라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어느 나라 대통령이 말했다. 그는 연설 중에“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 가난한 사람은 비싼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더 많이 갖기 위해 힘들게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한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고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불쌍한 사람을 베풀어주는 시혜적인 정신도 아닐 것이다. 나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함께 하는 이들을 충분히 배려하고 인간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면 그것이 곧 행복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애당초 사심 없이 선택한 것은 계획대로 잘되도록 해야 한다. 개인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고 공익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함께 살자’의 실천일 것이다. 진정 하느님께서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여 외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심을 나는 얼마나 깊이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