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20호 2015.03.22 
글쓴이 김기영 신부 

그대, 오늘 주님의 방문을 받았는가?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 gentium92@yahoo.co.kr

어느덧 사순의 막바지이다. 많은 교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와 단식, 희생과 나눔의 빗질로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어질러진 천국의 오솔길을 잘 쓸어주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사순절에는 은총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는 옛말대로 그 폭포수 한 번 원 없이 맞아보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시길 희망한다.

문득 우리 신부들에게 있어서 사순절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세계 어디를 가든, 어떤 자리에 있든 신부들은 주어진 일 이외에 매일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 미사와 성사집행, 성무일도, 묵주기도, 성체조배, 예비신자 교리, 병자방문, 영적상담, 공부 등이다. 교우 수가 적은 일본에 와서도 밥 한 끼 하자고 시간 좀 내달라는 분에게 선뜻 대답하지 못하면 “뭐, 신부님들이야 항상 바쁘시니까 이해합니다.”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럴 때마다 참 미안함이 앞선다. 그런데 살아보면 진짜 하루가 빠듯하다. 학창 시절 친구 만나는 재미삼아 헐렁헐렁(?) 성당 다녔을 때랑 비교해보면 신부로 사는 것은 거의 1년 365일이 사순절 수준이다. 그리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까마득해진다. 단, 예수님의 방문 없이 산다면 말이다. 이번 사순절에 나는 특별한 결심을 하지 않았다. 다만 사제로서, 선교사로서, 또 한 명의 천주교 신자로서 이미 하고 있는 일에 더욱 열과 성을 쏟기로 했다. 그리고 매일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방식으로 나를 방문하시는 예수님을 더욱 잘 알아뵙기 위해 영적 시력을 키우기로 했다. 때로는 교우들과의 친교 중에, 때로는 늦은 밤 성당을 찾아오는 누군가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발을 잘 씻겨드리기로 말이다. 

복자 알베리오네 신부님의“하루를 지내는 동안 십자가의 방문을 받지 않을 때는 한순간도 없습니다.”라는 말씀에 깊은 울림을 느낀다. 만약 우리가 신앙을 산다고 하면서 십자가의 방문을 바라지도 않고, 그분의 방문을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우리 신앙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고, 더 이상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도 힘들 것이다. 달갑지 않은 누군가의 방문, 바로 그때가 내 주님께서 나를 방문하시는 때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오늘은 주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방문해 주실지 기대하는 이의 가슴은 벌써부터 설레고 은총으로 물든다. 그리고 그 마음에는 결코 악의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부활의 언덕이 코앞이다. 베로니카와 함께 우리도 보속의 수건 한 장 쥐고 서서, 그 고난의 길 가시는 내 하느님의 얼굴을 닦아드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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