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석 자인데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 gentium92@yahoo.co.kr
일본은 4월에 회계연도가 바뀐다. 그래서 2~3월이 되면 지난 1년간 본당 사목의 서류와 회계장부를 정리하기에 바쁘다. 그러던 중 일이 생겼다. 교구 분담금을 바치는데 있어서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현재 확보된 교무금은 올해 바치기로 한 분담금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유를 살펴보니 분담금액은 5년 전 책정된 그대로인데, 그 와중에 교무금을 내고 있는 교우들의 숫자가 10%정도 줄어 있었다. 왜냐하니 천국으로 전출(?)가신 분들이 많았다. 게다가 작년 여름부터 새로 짓는 신도회관을 위해 신축하고 있는 중이라 남아 있는 교우들은 이중 부담을 떠안고 있었다. 사실 교우들 대부분이 연세드신 분들이고 연금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라 말을 꺼내기도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물론 바자회나 기타 수익사업을 해서 기금을 마련해야 되겠지만 그럴 시간과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는 수 없이 집행되지 않은 예산을 긁어모아서 분담금에 보태었다. 그래도 모자란 부분은 본당 건물 유지 및 보수를 위한 특별 회계에서 꺼내 보탰다. 한 마디로 쥐어짰다. 그리고 교구 쪽에도 내년에는 교우들의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주십사고 부탁도 드려봤다. 다행히, 본당 사정이 어느 정도 고려된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집행되지 않은 예산 중에‘기부 및 지원금’항목을 교구 분담금에 보탤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예산은 연초부터 고아원, 청소년 쉼터, 양로원 등 복지 시설에 기부 하기로 책정된 예산이었다. 부끄럽게도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이 예산은 전혀 쓰이질 않았고, 처음 의도와는 좀 다르게 쓰일 참이었다. 물론, 크게 본다면 교회를 위해서 쓰이는 돈이라 결국 하느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 자세에 대해서 한 번 돌아보자고 했다. 지난 1년간 우리 주위에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보기는 했느냐고 말이다. 교구 분담금을 일반 가정으로 치면 공과금을 내는 것이고, 더 크게 본다면 국민이 세금을 내는데 비유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응당 바쳐야 할 돈이란 말이다. 그러나 본당 내 다른 예산을 줄여서 분담금을 낸다면 희생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회의 약자들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권리를 신앙 공동체가 앞장서서 가로막는다면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천명한“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이라는 말은 연기처럼 맥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 긴 한숨이 나왔다. 교구 분담금을 내고 못 내고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살겠다고 모인 우리들 안에 가난한 이들 안에 숨어계신 예수님을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리는 의식과 마음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