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
김양희 레지나 / 수필가 supil99@hanmail.net
‘이제는 돌아가야겠습니다.
날마다 그리던 내 마음의 고향으로.
묻어도 묻히지 않던 불만을 가슴에 안고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하나하나 정리해 보아야 겠습니다.’
어느 날 세상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사흘 동안. 인연과 소통의 모든 관계를 끊고 존재의 심연으로 돌아가 자아를 만나기로 하던 날, 마음의 길을 따라가는 침묵피정의 시간이 주어졌다. 다다른 곳이 마음의 고향인지는 몰랐다. 나무와 바람, 구름과 새소리가 있는 수도원의 정적은 묵었던 마음 갈피를 펼쳐보라는 듯 맑은 종소리로 화답했다. 겨울의 숲은 고요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외면할 수 없는 관계성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음과도 같은 것이다. 딸 아내 엄마 그 모든 고리가 배제된 공간에서는 훤히 한 인간의 내면이 물밑처럼 비쳐왔다. 창 밖에는 산까치가 날갯짓을 한다. 새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세상이란 숲의 한 마리 새였음을 인식한다. 침울했을 때는 가라앉은 소리로, 기뻤을 때는 하이 톤의 맑은 소리로, 존재감을 전했지만 세상 숲에는 여전히 어두움의 목소리가 더욱 많았었다. 숲에서 나와 비로소 나무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한낮의 넓은 성전, 감실을 바라보는 나는 오로지 혼자다. 복도에선 조용히 스쳐지나고 식탁도 따로따로 철저히 말이 배제된 공간에서 비로소 무한의 자유를 맛보다. 말로 인해 허기지고 소리로 인해 마음에 어떤 아픔을 가졌다면 침묵의 세계는 그것들을 치유해주는 힐링의 공간이다.
더러는 기도를 푸르른 산에 비유하기도 했다. 절대자를 향해 자주 바라볼 때 내 영혼은 녹음 무성한 푸른 산이었다. 그러나 기도가 메마를 때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민둥산, 황폐한 불모지가 연상되곤 했다. 내 안에서 기도는 영혼의 푸르름이다.
새벽잠에서 깨어나 수도원 숲길을 걷는다. 숲속은 가풀막1)도 된비알2)도 없이 평화로운 산길로 이어진다. 푸른 안개 속에서 황토색의 낙막한 숲길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두런두런 소리가 들렸다. 수도자들의 새벽 성무일도 소리였다. 그제야 주머니에서 묵주를 꺼내 들고는 이번 침묵 피정에 함께하지 못한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한다.
수도원을 떠나는 날 아침, 잣나무 가지 위로 아기 졸음처럼 잔잔한 부슬비가 조곤조곤 내리고 있었다. 마치 침묵 피정 내내 나를 지배했던 비루한 일상의 조각과 미처 꿰매지지 않은 상처 난 부분들을 가만가만 다독여 주는 듯이.
전나무 숲에도 내려앉는 가랑비는 그렇게 또 일상의 파도 속으로 조용히 나를 밀어 넣고 있었다.
1) 가풀막 : 몹시 가파르게 비탈진 곳
2) 된비알 : 몹시 험한 비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