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10호 2015.01.11 
글쓴이 김기영 신부 

두 모녀를 통해 드러난 빛의 신비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 gentium92@yahoo.co.kr

지난 7월, 견진성사를 받은 70대 자매가 있었다. 신앙에 눈을 뜬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순수하고 열심한 마음으로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견진을 준비하면서 시련도 있었다. 딸의 양손이 골절되는 큰 사고가 있었음에도 이 모든 일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며 성사를 받았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이 자매에게도 일이 생겼다. 눈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수술 결과가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의사 선생님마저“앞으로 시력이 더 좋아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사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단다. 거짓된 희망보다는 앞으로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라는 배려였을 것이다. 

갑자기 달라 보이는 세상! 알록달록 천연색으로 보이던 세상은 사라지고, 이 모든 것이 짙은 안개에 뒤덮인 듯 희뿌옇게만 보인단다. 부랴부랴 병자방문을 갔을 때도 바로 코 앞에 있는 내 얼굴조차 안 보인다고 하니 생활의 불편함은 물론 그 심적 고통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안 갔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으로 이 자매에게 고마웠던 것은 성사를 받고 얼마 되지 않은 사이에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 이 고통의 시간을 잘도 감내하고 있었고, 다시 성당에 나갈 수 있기만을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느님께서 진정 살아 계신다면, 이런 이의 마음을 어찌 모른다 할 수 있겠는가? 

이 와중에, 이 자매의 딸에게도 은총의 강물이 흘렀나 보다. 엄마의 눈이 갑자기 안 보이게 되면서 함께 생활하고 있던 딸에게도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았다. 아마도 걱정과 불안이 엄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안에 휩싸이기보다는 믿음을 택했다. 거동이 불편한 엄마를 대신해서 자신이 저녁 미사와 묵주기도 모임까지 함께 하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매의 딸은 열심한 불교 신자였는데,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뒤로하고, 엄마의 하느님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그 효심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이번 성탄을 앞두고 기쁜 소식마저 들려주었다. 이 자매의 딸도 영세를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빛의 신비, 마지막 5단을 바치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신부님, 저도 영세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던 그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수개월 안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사건이 이렇게 일어났고, 그 은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리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어머니의 전구와 함께 청할 때, 결코 주님께서는 모른 척하시지 않고, 이렇게 가족 모두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심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었다. 지난주, 드디어 모녀가 함께 주일미사에 함께 참례했고, 공동체 모두가 큰 박수로 그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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