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10대 뉴스
이동화 타라쿠스 신부/ 노동사목 담당
한 해의 마지막 자락에 서면 여러 언론 매체에서는 한 해의 10대 뉴스를 선정한다. 나도 내 나름대로 내 마음의 10대 뉴스를 꼽아본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하여 군대 폭력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깊은 충격을 가져다주고, 또 우리 사회가 깊이 성찰해야 할 뉴스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올해의 첫 번째 뉴스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문을 꼽고 싶다. 사실 교황님께서 보여주신 가난하고 아픈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과 낮은 자세는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있었던 기자회견 중 말씀은 내 영혼을 깨우고, 내 마음의 큰 위로와 치유가 된 사건이었다. 기자회견 중에 교황님의 말씀은 이러했다. 세월호 배지를 달고 반나절이 지나자 누군가가“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니 배지를 떼는 것이 좋겠다.”고 했단다. 교황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단다.“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교황님의 말씀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겠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오해의 소지를 주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말씀이야말로 성경 안에서 드러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특별한 자리와 맞닿아 있고, 사회교리에서 말하는‘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원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교회가 무엇인지, 또 그리스도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한국의 주교님들께 이르신 대로,“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시는 분이시고, 가난한 이들이야말로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인 것이다.
물론 가난의 뜻이 물질의 결핍에만 한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난은 세상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만 신뢰하는 태도일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연대의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난을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지나치고서는 스승의 삶을 따를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뜻에서 인간 고통의 현실 앞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어쩌면 그 현실을 외면하는 것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다름 아닌 십자가를 외면하는 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황님의 말씀은 잠자고 있던 나의 양심을, 그리고 무디어져 있던 내 마음을 일깨우는 하나의 죽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올해 나를 일깨우는 최고의 뉴스는 바로 교황님의 이 말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