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중의 갑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부장 fogtak@naver.com
“만 원 한 장에도 갑질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며칠 전 술 마신 저를 집까지 바래다준 대리기사가 한 말입니다. 대리기사라고 함부로 반말하고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갑’의 관계에서 약자인‘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이른바‘갑질’이라고 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열 명 중에 아홉은 갑질을 당해 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에게,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에게, 고참이 후임에게 등… 갑질 문화가 곳곳에 만연해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의 한 부자동네에서 입주민의 무시를 견디다 못한 아파트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한 사회학자는 세속의 작동원리를‘허영’과‘두려움’으로 꼽았습니다. 갑질의 원리도 비슷합니다. 권력과 돈을 앞세워 나를 부풀리고 이후에는 갑에서 을로 전락하지 않을까 두려워 더 큰 지위와 돈에 매달리게 되는 겁니다. 이런 갑질에 익숙해지면 내 잘못보다 남의 잘못을 탓하게 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아도 된다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빠지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내 아이가 을보다는 갑의 위치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모임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아 내 말이 더 영향력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남을 무시하면서 남의 무시는 견디지 못하고, 나는 특권을 누려도 괜찮다는 일방적 문화가 세상의 갑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성당에서도 신심단체의 간부라고 해서 다른 이의 신앙을 쉽게 재단한 적은 없는 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갑 중의 갑은 하느님입니다. 생명을 주관하고 세상을 내신 하느님이야말로 요즘 아이들 표현으로‘수퍼-울트라 갑’입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통치 원리는 허영과 두려움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입니다. 왕 중의 왕이 스스로 낮은 곳으로 오시어 십자가의 모욕을 견디셨고 생명을 바치는 사랑으로 구원의 주관자가 되셨습니다.“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선언하시고 죄를 용서하고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더 늦기 전에“우리가 모셔야 할 갑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답은 명확합니다. 지금은 가난하고 무시당하고 보잘것없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이들입니다. 무상한 권력과 덧없는 돈과는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친구이고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화 복음화의 해’를 시작하면서 세속의‘갑의 문화’를 떨쳐버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