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와 같은 이웃사랑
변미정 모니카 / 가톨릭노동상담소 사무차장 free6403@hanmail.net
주일마다 이주노동자들의 한글수업 자원봉사를 하는 김 선생님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상담실을 들어옵니다.“아~ 참네. 저 보고 할머니들이 한국말 잘한다고 칭찬하시네요. 하하하.” 미사 마치고 가시는 할머니들이 김 선생님 얼굴을 보고 동남아에서 온 사람인줄 알고,“헬로우”하며 인사를 먼저 건네셨는데,“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드리니“아고 한국말도 잘하네.”하며 칭찬하셨다는 사연을 듣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가톨릭센터에서 초량성당으로 옮겨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을 위한 미사를 참례한 지 벌써 두 해가 지났습니다. 2시에는 베트남어 미사, 4시에는 영어 미사로 봉헌하고, 한글교실, 무료 진료소‘도로시의 집’도 운영하고,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담도 받고 있어서 주말 오후 내내 초량성당은 외국인들로 북적거립니다. 본당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저러하게 신경 쓸 일도 많고, 지원하고 마음 써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신부님을 비롯한 초량성당 교우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많은 외국인 노동자, 이주민 친구들이 하느님의 전례를 잘 봉헌하며, 초량성당은 베트남, 필리핀 공동체 신앙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이 끝날 무렵 성당 옆 빌라에 사시는 분들이 주일마다 외국인 친구들이 떼를 지어 다니면서 떠드는 것에 불만을 품고 성당에 항의하려 했다고 합니다. 마침 빌라에 사시는 교우께서 그 사실을 알고, 주일에 편히 쉬고 있는 성당 주변의 주민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고향 떠나 멀리 와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말 통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얼마나 반갑고 좋겠냐고, 우리가 저 사람들을 잘 감싸 안고 이해해줘야지 않겠냐.”며 대변해주셨다는 소리를 듣고“초량성당 교우님들이 공간뿐만 아니라 마음도 저렇게 내어주고 계시구나.”싶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초량성당의 교중 미사를 참석하다 보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것이 벽면에 나란히 서 있는 지팡이들입니다. 혼자 서 있는 것조차 힘든 몸이지만, 주일이면 곱게 차려입으시고 지팡이에 의지해 오셔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며‘머리로 이해하고 알려는 신앙보다 우선하는 것이 몸이 실천하는 신앙이구나’싶어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내 안에, 교회 울타리 안에 들어앉아 있기보다는 다치고 깨질 위험을 감수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교회의 진정한 모습은 구현될 수 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처럼 이방인들에게 기꺼이 손 내밀고 잡아주며, 기댈 수 있는 지팡이와 같은 이웃사랑을 보여주시는 초량성당 교우님들께 이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