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95호 2014.10.12 
글쓴이 김검회 엘리사벳 

지속 가능한 미래, 마라도에서 배우다

김검회 엘리사벳 /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eli70@hanmail.net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마라도’는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30분이면 도착하고, 2시간이면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섬이다. 마라도에 처음 전기가 공급된 것은 1975년 경운기 디젤 엔진을 이용한 5kW 용량의 발전기가 가동되면서 부터였고, 해양국립공원지정 등에 따라 전력수요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80년대 이후 전 세계가 지구온난화 문제로 몸살을 앓자 친환경 대안에너지로의 전환운동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났는데, 마라도 역시 장기적으로 친환경적이며 재생 가능한 에너지 발전이 마라도의 청정 이미지에 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을 추진해 10년 전부터‘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마을 전체가 사용해왔다. 그리고 청정에너지 시범사업의 효과로 방문객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 주민들은 민박과 음식점, 슈퍼마켓, 낚싯배 영업 등 관광서비스 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주민 한 명이 육지에서 골프카를 들여와 관광객들을 상대로 마라도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투어를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되니까 마을주민의 대다수가 골프카 운행사업에 뛰어들면서 60가구가 사는 마을에 골프카 대수만 70대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골프카에 필요한 전기를 태양광 발전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다시 검은 매연이 나는 추가 디젤 발전기와 과거의 발전기까지 돌려가면서 밤낮 없이 전기를 생산해야만 했다. 

그리고 배에서 내린 방문객들도 오랜 시간 섬에 머무르지 않고 골프카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고는 떠나버려 마라도의 경제는 서서히 죽어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마을 구석구석의 음식점과 숙박업소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고 생계를 위해 골프카 운송업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마을 주민들, 그들은 지난 시절, 온정을 나누던 이웃사촌들이 그리웠지만 이미 그 자리에는 관광객 유치에 신경전을 벌이는 이웃들로 채워져 있었다. 다행히 욕망과 경쟁으로 얼룩졌던 골프카 산업이 여러 차례의 인명 사고로 인해 전면금지 되면서 마라도 주민들은 원래의 생업으로 복귀했고 경제도 되살아났다. 그리고 서서히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생겨나고 산들바람이 부는 동네 담벼락에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찾아들고 있다. 

마라도는 인류의 욕망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와 경제논리가 더 큰 욕망을 낳고 치열한 경쟁 속에 공멸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매일의 삶은 선택의 기로에 서서 양심과 복음에 따라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하지만, 세속의 유혹을 뿌리치고 불편하고 절제된 삶을 선택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살아내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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