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묘지는 예비 신학교
김상진 요한 / 중앙일보 기자 daedan57@hanmail.net
내가 다니는 본당에 형제 사제를 둔 두 집안이 있다.
궁금해서 두 분의 어머니께 물었다.“어떻게 한 명도 어려운데 두 아들을 모두 사제로 만들었어요?”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별로 한 것이 없어요. 성지순례를 자주 다녔을 뿐입니다.”이웃에 살던 두 집안은 틈만 나면 어린 아들 4명을 데리고 함께 전국의 성지순례를 다녔다고 한다.
그랬더니 초등학교 때 두 집의 아들 4명 중 가장 큰 형이 복사단에 들어가더니 줄줄이 복사가 되었다. 대학갈 무렵 먼저 복사가 됐던 형이 신학교를 갔다. 나머지 동생들도 뒤따라 신학교를 갔다. 그리고 4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국내외 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우리나라 성지는 거의 순교자들의 무덤이거나 사형터다. 두 가족은 성지에서 순교자의 발자취를 더듬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가는 차 안에서 순교자의 삶을 묵상하며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철부지 아이들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사제가 됐다. 무덤과 사형 터가‘예비 신학교’역할을 한 것이다.
두 집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아들을 둔 나는 왜 그리 못했는가. 놀이시설과 관광지보다 성지순례를 자주 다녔다면 두 아들의 생각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지에서 순교자의 삶이 적힌 안내문을 읽으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 어린 나이에 어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천주를 모른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건만 어린 순교자들은 망나니의 칼을 받았다.
그 어린 순교자들의 사연을 들으며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순교 영성은 무엇인가? 물질주의, 세속주의, 개인주의의 세파에 맞서 그리스도교 신앙인 삶에 충실한 것이리라. 견디기 힘든 십자가가 다가올 때 순교하는 마음으로 견뎌내는 일이 아닐까. 이른바 피 흘리지 않는‘백색 순교’다. 박해시대처럼 피흘리는‘적색 순교’는 할 수 없지만 매일 우리가 겪는 작은 불편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순교적 삶이다.
올해의 순교자 성월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 반열에 오른 것이 한 달여 전이다. 한국교회 순교자가 시복된 세 번째 행사지만 한국에서 거행된 첫 시복식이다. 게다가 교황님이 직접 오셔서 시복식을 주례했으니 더 큰 영광이다. 9월 순교자 성월이 여느 해와 달리 더욱 각별한 이유다. 순교자 성월이 가기 전에 순교 성지를 찾아보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시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