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묘지는 예비 신학교

가톨릭부산 2015.11.06 04:49 조회 수 : 85

호수 2292호 2014.09.21 
글쓴이 김상진 요한 

순교자 묘지는 예비 신학교

김상진 요한 / 중앙일보 기자 daedan57@hanmail.net

내가 다니는 본당에 형제 사제를 둔 두 집안이 있다. 
궁금해서 두 분의 어머니께 물었다.“어떻게 한 명도 어려운데 두 아들을 모두 사제로 만들었어요?”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별로 한 것이 없어요. 성지순례를 자주 다녔을 뿐입니다.”이웃에 살던 두 집안은 틈만 나면 어린 아들 4명을 데리고 함께 전국의 성지순례를 다녔다고 한다.
그랬더니 초등학교 때 두 집의 아들 4명 중 가장 큰 형이 복사단에 들어가더니 줄줄이 복사가 되었다. 대학갈 무렵 먼저 복사가 됐던 형이 신학교를 갔다. 나머지 동생들도 뒤따라 신학교를 갔다. 그리고 4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국내외 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우리나라 성지는 거의 순교자들의 무덤이거나 사형터다. 두 가족은 성지에서 순교자의 발자취를 더듬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가는 차 안에서 순교자의 삶을 묵상하며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철부지 아이들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사제가 됐다. 무덤과 사형 터가‘예비 신학교’역할을 한 것이다. 
두 집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아들을 둔 나는 왜 그리 못했는가. 놀이시설과 관광지보다 성지순례를 자주 다녔다면 두 아들의 생각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지에서 순교자의 삶이 적힌 안내문을 읽으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 어린 나이에 어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천주를 모른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건만 어린 순교자들은 망나니의 칼을 받았다. 
그 어린 순교자들의 사연을 들으며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순교 영성은 무엇인가? 물질주의, 세속주의, 개인주의의 세파에 맞서 그리스도교 신앙인 삶에 충실한 것이리라. 견디기 힘든 십자가가 다가올 때 순교하는 마음으로 견뎌내는 일이 아닐까. 이른바 피 흘리지 않는‘백색 순교’다. 박해시대처럼 피흘리는‘적색 순교’는 할 수 없지만 매일 우리가 겪는 작은 불편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순교적 삶이다.
올해의 순교자 성월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 반열에 오른 것이 한 달여 전이다. 한국교회 순교자가 시복된 세 번째 행사지만 한국에서 거행된 첫 시복식이다. 게다가 교황님이 직접 오셔서 시복식을 주례했으니 더 큰 영광이다. 9월 순교자 성월이 여느 해와 달리 더욱 각별한 이유다. 순교자 성월이 가기 전에 순교 성지를 찾아보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시작이 될 수 있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76호 2025. 6. 29  주님 사랑 글 잔치 김임순 
2875호 2025. 6. 22  “당신은 내 빵의 밀알입니다.” 강은희 헬레나 
2874호 2025. 6. 15  할머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처럼 박선정 헬레나 
2873호 2025. 6. 8  직반인의 삶 류영수 요셉 
2872호 2025. 6. 1.  P하지 말고, 죄다 R리자 원성현 스테파노 
2871호 2025. 5. 25.  함께하는 기쁨 이원용 신부 
2870호 2025. 5. 18.  사람이 왔다. 김도아 프란치스카 
2869호 2025. 5. 11.  성소의 완성 손한경 소벽 수녀 
2868호 2025. 5. 4.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하십시오. 김지혜 빈첸시아 
2865호 2025. 4. 13.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안덕자 베네딕다 
2864호 2025. 4. 6.  최고의 유산 양소영 마리아 
2863호 2025. 3. 30.  무리요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자비의 노래 박시현 가브리엘라 
2862호 2025. 3. 23.  현세의 복음적 삶, 내세의 영원한 삶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61호 2025. 3. 16.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60호 2025. 3. 9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사순 시기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2859호 2025. 3. 2  ‘나’ & ‘우리 함께 together’ 김민순 마리안나 
2858호 2025. 2. 23.  예수님 깨우기 탁은수 베드로 
2857호 2025. 2. 16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최경련 소화데레사 
2856호 2025. 2. 9.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안경숙 마리엠마 수녀 
2855호 2025. 2. 2  2025년 축성 생활의 날 담화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