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을 묻다
김정렬 모세 신부
걷기가 열풍인 것 같다. 많은 이들이 너도 나도 건강을 위해서 걷고, 각 지자체는 앞다퉈가며 새로운 길들을 개척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길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은 신자가 아니어도 스페인까지 가서 야고보 사도가 걸었다는 길을 걷기도 한다.
세상의 이런 시류에 힘입어 지난해 10월 강원도 고성 화진포에서 부산 남천성당까지 18일간 도보순례를 했었다. 어느 지자체는‘낭만가도’라는 길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하루 종일, 매일 걷는 일은 결코 낭만이 아니었다. 인생길도 그렇겠지만 앞으로 나갈 길은 알지 못해 두려움의 연속이었고, 왔던 길을 뒤돌아보면‘좀 더 좋은 길을 걸을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많은 이들은 숙소가 제일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식사였다. 해안 길에 즐비한‘대게 집과 횟집’은 혼자서 밥을 먹기에는 주문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녁에 컵라면, 아침에도 컵라면, 점심에는 칼국수를 먹으며 걸었던 날도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었던 가장 큰 감사함은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잘 수 있는 방이 있었다는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면서까지 걸었던 것은 내 인생길을 반성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을 비롯해 많은 이들은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에 대해, 또 신앙의 길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해 방황하고, 좌절하고, 후회하며 사는 것 같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에서 맞바람을 만나 파도에 시달리고 있을 때 스승을 유령으로 착각하고 두려워하자“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 27)말씀 하시며 제자들을 안심시키셨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임마누엘 약속이 성경 전체에 365번 나온다고 들었다. 성경에서 직접 찾아 일일이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많이 나오는 것은 분명 주님이 매일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인도해주시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시면서 두려워 말라고 용기를 주시는 것이 확실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 33)하시며 당신의 길을 완주하셨다. 스승이 걸으셨고 보여주신 길을 통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해서 우리 각자의 길을 걸어 갈 때, 우리가 그리던 본향(本鄕) 하느님 나라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