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가톨릭부산 2015.11.06 04:46 조회 수 : 57

호수 2287호 2014.08.17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8월의 크리스마스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보도국 부장 fogtak@naver.com

벅찬 설렘으로 몇 달을 기다렸습니다. 낡은 안경을 쓴 환한 미소의 교황님을 직접 뵐 수 있다니… 노숙자들과 생일을 보내시고 장애인과 무슬림 여성의 발을 씻겨주신 교황님. 전쟁 중인 중동의 지도자를 한자리에 모으시고 마피아를 꾸짖으신 파격의 교황님. 행동 하나하나에 세계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교황님 관련 책이 잇따라 출판됐고 언론은 보수와 진보의 구분 없이 교황님 방한에 기대에 찬 기사들을 쏟아 냈습니다. 오랜만에 가톨릭 신자로서 우쭐했고 기분 좋았습니다. 마치 잔칫날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교황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팔순에 가까운 교황님은 지구 반대편의 작은 나라를 왜 찾아오신 걸까요? 잔치를 벌이시려고요?

그동안 교황님은 고통받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을 찾으셨습니다. 격려와 위로가 필요한 곳이지요. 그럼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도 비슷한 이유 아닐까요? 세계 유일의 분단국. 수학여행 떠난 아이들이 어른들의 욕심에 목숨을 잃고, 군대 간 청년들이 폭력에 쓰러진 나라. 빈부의 격차가 커서 청년들이 희망을 꿈꾸기 힘든 나라. 가족이 무너지고 돈의 위력이 사람의 가치보다 커져 버린 나라가 우리가 살고 현실 아닐까요? 예수님이 보시기에 지금 이곳은 잔치가 아니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의 이웃이 되라고 하셨는데 성당을 나서자마자 세속의 빛을 따라나선 저에게 교황님이 미소 띤 얼굴로“너 뭐 하고 있니?”하고 은근히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양반과 천민이 서로를 보듬으며 죽음으로 세운 한국교회가 지금은 성전과 권위에 갇혀 이웃을 잃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황님은 황제의 행렬이 아니라 사람 좋은 할아버지, 친근한 이웃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 해고 노동자, 장애인들을 만나 위로와 희망을 전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도 변치 않는 평화로운 미소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노기 띤 얼굴로“너 좀 잘해라.”하시지 않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가셔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교황님의 모습이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과 닮지 않았나요? 예수님과 함께 오시어 고통을 이기는 희망의 미소를 보여주신 교황님. 그리고 이 땅에서 이루어진 8월의 크리스마스. 그 특별한 은총이 아주 오랫동안 머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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