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스토리텔링
박주영 첼레스티노 / 조선일보 부산 취재 본부장 park21@chosun.com
요즘‘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란 단어가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생활이나 대학, 신문, 방송, 인터넷, 마케팅, 정치… 제게도 이 단어는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제 직업 탓이겠지요. 전공이 언론정보학이어서 더욱 그럴지 모릅니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 자주‘스토리텔링’을 읊조리곤 합니다. 무엇을 볼 때나 겪을 때, 읽을 때 뇌리엔 이 단어가 맴돌곤 합니다.
얼마 전 우연히 아내와 함께 한 TV방송의‘인문학 특강’을 보게 됐습니다. 르네상스에 대한 강의였는데‘근대의 시작은 단테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됐다’는 내용 등이었습니다. 강의는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제 생각은‘음~단테의 사랑이 근대의 시작이라… 사랑? 예수님의 사랑은? 또 하느님의 사랑은?’등으로 내달렸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창조, 세상의 시작’,‘예수님의 사랑은 새 아담, 새 인류의 시작’등의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러다‘성경은 진짜 스토리텔링의 보고이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카인과 아벨, 노아,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 요셉과 형제들, 모세, 여호수아, 다윗, 느헤미야, 토비트, 마카베오… 그리고 성모님과 요셉, 예수님, 베드로, 요한, 바오로…
수많은 사람들의‘스토리(story)’들이 가득하지요. 그런데‘스토리텔링’엔‘스토리’말고 더 있습니다.‘말한다’는 뜻을 담은‘+텔링(telling)’입니다.‘스토리’는 예전에 이미 되어 있는 것이고‘텔링’은 지금 얘기하는 거지요. 이‘텔링’은 만담가, 이야기꾼, 학자만 하는게 아니지요. 누구나, 우리도 할 수 있는 거지요.
특히 자신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나에게 성경의‘스토리’를‘텔링’하는 것. 이‘텔링’은 지식이나 단순한‘입말’이 아닐 겁니다. 자기가 자신에게‘텔링’하면 침묵하고 묵상하고 관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안에는, 그 과정에는 나 말고 다른 무엇이 자리합니다. 그것이 없으면‘텔링’은 지식, 입말, 껍데기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성경 스토리텔링’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성경 스토리텔링’을 하다보면 저절로 요즘 잘 나가는‘스토리텔링’의 전문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마음 안에 머물고 솟아나는 평화나 행복일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