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부부는 첫 수도성소자?
김상진 요한 / 중앙일보 기자 daedan57@hanmail.net
문을 여니 세 칸으로 나누어진 집 내부가 나타났다. 남·여가 각각 사용하던 방이 좌우 측에 하나씩 있고 가운데는 십자가를 모신 기도 방이었다.
‘동정부부’인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가 살았던 전북 완주군 이서면 초남이 성지 모습이다.
전주 출장길에 성지를 찾았다. 기자의 습관으로 동정부부 실체를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회가 만든 신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복원해 놓은 동정부부가 살았던 집과 여러 자료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집은 출입문을 같이 사용하지만 사실상 독신생활을 하는 구조였다.
또 치명자산 성당에서『이 루갈다의 옥중편지』 같은 책과 자료를 구해서 읽었다. 여러 곳에서 피 끓는 젊은 부부가 동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이 우리나라의 첫 수도성소자였다고 이해하니 동정부부라는 어려운 용어가 한결 가깝게 다가왔다. 초남이 성지 앞에는‘조선 천주교 최초 신자 마을’이라는 안내문이 있다. 이 안내문 대신에‘최초의 수도성소자 마을’이라고 고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779년 이곳에서 태어난 유중철은 유항검(아우구스띠노)의 장남이다. 유항검은 당시 조선천주교회가 운영하던 가성직제도의 부당함을 찾아내 중단시킬 정도로 교리가 깊었다. 그는 선교사 파견을 호소하기 위한 밀사를 중국에 보낼 막대한 자금을 흔쾌히 내놓았다. 1795년 4월 한국의 첫 선교사로 입국한 주문모 신부는 유항검의 집에서 1주일 머물며 성사를 집전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유중철은 평생을 동정으로 살면서 하느님만을 섬기기로 결심한다. 주 신부가 자기 집을 찾았을 때 이 결심을 고백한다.
그 후 주 신부는 서울에서 선교를 하다가 이순이에게 첫영성체를 준다. 1782년생으로 양반가문 출신인 이순이는 홀어머니 밑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다. 첫영성체 때 주 신부에게 성모 마리아처럼 살겠다고 고백한다. 그 순간 주 신부는 유중철이 생각났다.
당시 유교가 강했던 조선시대는 남·여가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을 죄악시할 때였다. 그래서 주 신부는 두 사람이 사회의 지탄을 받지 않고 동정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한다. 결혼이라는 형식을 빌리되 남매처럼 살면서 동정생활을 하도록 권한다. 동정부부는 주 신부가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해 한국교회에 맞게 만들어낸 작품이다. 요즈음 곳곳에서 스토리텔링을 많이 하지만 이만한 것이 있을까.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맞아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순교자 한분 한분의 신앙생활을 곰곰이 묵상하면 우리의 신앙도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