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윤미순 데레사 / 수필가, jinyn5020@daum.net
문학 강의에 처음 입문하신 분들은‘과연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살아오면서 느꼈던 나의 삶을 풀어놓고 싶은데 잘될까’하며 얼굴에는 긴장이 감돌며 어떤 때는 비장하기까지 해서 안쓰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문학작품들을 만나고 즐기게 되면서 긴장은 점차 사라지고 어느덧 표정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바람 한줄기, 심지어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과 길거리 서 있는 가로수 하나하나까지 예전엔 예사로 지나쳤던 것들이 이제는 내게 의미가 되어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진흙탕물이 튀고 육중한 트럭이 짓밟고 지나가 뭉개져 버린 풀더미를 보는 듯했던 사람이 점차 삶의 활력을 찾으며 끈으로 연결된 세상의 이치와 아이러니를 자신의 삶에서 가치 있게 풀어가려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며 이젠 세상과 화해를 했구나하고 안도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글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감각적으로 느끼게 되므로 글에 구성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재미나는 수업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들과의‘거리’는 볼 수 없는 곳까지 이어놓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라고 도닥인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의 거리가 나와의 인연으로 한 생명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성당 근처를 벗어나지 않고 살려는 이유가 있다. 바로 매일 새벽 미사가 있기 때문이다.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하루의 첫 시작을 하느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그분 안에 있다는 은밀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다. 성당 뜰에 피고 지는 꽃들과 나뭇잎, 휙 지나가는 길고양이들과 막 잠에서 깨어난 잔디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은 언제나 다정하다. 사소한 것들까지 하느님과의 거리를 좁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새벽의 기쁨을 알게 된 것은 나의 형편없음과 부족함이 신발 밑창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이다. 매일 새벽 미사에 가서 하느님께 묻고 나의 일을 해나가면 나의 부족한 머리로 일을 할 때와는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선을 맞춘다는 것은 의식의 방향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주말마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며 두세 시간 동안 한 주간 무엇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신나게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말하는 중간 비집고 들어가 열 내며 떠든다. 이야기 끝에는 한 주간동안 열심히 살고 만나자 한다. 가족과의 거리는 바깥 생활을 성실히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역시 별다를 것이 없다.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해주겠다는 거래는 진정 가까워질 수 없다.
민족의 화해 역시 마음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에서 출발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