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74호 2014.05.25 
글쓴이 장영희 요한 

다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장영희 요한 / 시인, 부산대 겸임교수 jangyhi@hanmail.net

세상이 참 살기 좋아지고 무척 행복해졌다고 다들 말하지만 그래도 가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때는 바깥 눈길이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울고 싶어진다.

소중한 인정 주고받던 이의 궂긴 소식을 들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 유품 속에서 아직도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낡은 손목시계를 볼 때, 시간은 참으로 무상하여 사람의 삶에 인정사정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낡은 사진 속 같이 찍은 이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 청운의 꿈을 꾸면서 산 책이 단 한 장도 읽히지 않은 채 책장 구석진 곳에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할 때, 부디 오래 간직해 주길 바라면서 존경하는 이에게 정성껏 바친 시집을 헌책방 구석에서 발견할 때 슬프다.

자지러질 듯 울면서 엄마 찾는 길 잃은 어린아이의 눈물 그렁그렁한 눈, 동물원에 갇힌 맹수의 힘 잃은 눈빛, 있을 곳을 찾지 못한 존재들의 서러움이 묻어나는 몸짓, 어린 시절 풀꽃에 물을 주듯 꿈을 심고 가꾸던 초등학교가 사라진 빈터, 모든 것이 돈의 논리로 귀결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해야 할 어떤 힘도 쓰지 못하는 소시민, 자신은 달리면서도 걷지 못하는 자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 부드러운 곡선이 사라지고 칼날 같은 직선만이 위엄인 듯 자리하는 세상, 완장을 갈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배우고 익히며 그 가르침을 삶의 순간마다 적용하고 살았는데도 여전히 판단이 헷갈릴 때, 침몰하는 배를 두고 자신의 목숨만 도모하는 선장이 허겁지겁 사라지고 그리하여 곱디고운 꽃들 가득한 그 배가 속절없이 침몰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한 사람의 어리석은 판단이 수많은 이의 아름다운 목숨을 앗아갈 때, 꽃 같은 자식 가슴 속에 묻고 또 어김없이 눈부시게 다가올 봄날을 맞이해야 할 어버이들을 볼 때, 국민의 마름임을 자처하면서 5년 계약직 한국호 선장이 되었으면서도 선장 노릇, 마름 노릇 다 못하는 그이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작은 촛불이 흔들릴 때, 실천의 게으름을 미워하면서도 앎을 실천하지 못할 때, 눈과 손의 싸움에서 눈이 이기고 손이 기어이 지고 말 때, 작은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이를 쩨쩨하다고 말하는 이를 만날 때, 소홀함을 자꾸만 대범함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만날 때, 지금 그 사람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몸과 마음이 함께 있지 못하는 사람을 만날 때, 화려한 꽃들이 떨어진 자리에 연초록 새잎이 나는 나뭇가지를 볼 때, 다시 슬픔에 깊이 젖는다.

호수 제목 글쓴이
2278호 2014.06.22  거리 윤미순 데레사 
2277호 2014.06.15  앗쑴! 히로시마 김기영 신부 
2276호 2014.06.08  공감에 대하여 이동화 신부 
2275호 2014.06.01  내 자리와 제자리 탁은수 베드로 
2274호 2014.05.25  다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장영희 요한 
2273호 2014.05.18  함께 살아가기 김영일 바오로 
2272호 2014.05.11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김검회 엘리사벳 
2270호 2014.04.27  응답 [1] 장정애 마리아고레띠 
2269호 2014.04.20  사랑 앞에 더 이상의 악이 없음을 김기영 신부 
2268호 2014.04.13  이제는 싹을 틔울 시간이야 - 냉담교우들에게 손 내미는 교회 변미정 모니카 
2267호 2014.04.06  진주 운석은 하느님의 편지 김상진 요한 
2266호 2014.03.30  평화를 빕니다! 박옥위 데레사 
2265호 2014.03.23  일치, 이해의 다른 이름 김영일 바오로 
2264호 2014.03.16  사순 시기 박주미 막달레나 
2263호 2014.03.09  떠날 때에… 탁은수 베드로 
2262호 2014.03.02  마른 강에 그물을 던지지 마라 윤미순 데레사 
2261호 2014.02.23  때로는 요셉처럼, 때로는 마리아처럼 김기영 신부 
2260호 2014.02.16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 김광돈 요셉 
2259호 2014.02.09  일상 속에 숨은 새로움 박주영 첼레스티노 
2258호 2014.02.02  천리포 수목원을 아시나요 장영희 요한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