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장영희 요한 / 시인, 부산대 겸임교수 jangyhi@hanmail.net
세상이 참 살기 좋아지고 무척 행복해졌다고 다들 말하지만 그래도 가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때는 바깥 눈길이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울고 싶어진다.
소중한 인정 주고받던 이의 궂긴 소식을 들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 유품 속에서 아직도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낡은 손목시계를 볼 때, 시간은 참으로 무상하여 사람의 삶에 인정사정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낡은 사진 속 같이 찍은 이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 청운의 꿈을 꾸면서 산 책이 단 한 장도 읽히지 않은 채 책장 구석진 곳에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할 때, 부디 오래 간직해 주길 바라면서 존경하는 이에게 정성껏 바친 시집을 헌책방 구석에서 발견할 때 슬프다.
자지러질 듯 울면서 엄마 찾는 길 잃은 어린아이의 눈물 그렁그렁한 눈, 동물원에 갇힌 맹수의 힘 잃은 눈빛, 있을 곳을 찾지 못한 존재들의 서러움이 묻어나는 몸짓, 어린 시절 풀꽃에 물을 주듯 꿈을 심고 가꾸던 초등학교가 사라진 빈터, 모든 것이 돈의 논리로 귀결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해야 할 어떤 힘도 쓰지 못하는 소시민, 자신은 달리면서도 걷지 못하는 자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 부드러운 곡선이 사라지고 칼날 같은 직선만이 위엄인 듯 자리하는 세상, 완장을 갈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배우고 익히며 그 가르침을 삶의 순간마다 적용하고 살았는데도 여전히 판단이 헷갈릴 때, 침몰하는 배를 두고 자신의 목숨만 도모하는 선장이 허겁지겁 사라지고 그리하여 곱디고운 꽃들 가득한 그 배가 속절없이 침몰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한 사람의 어리석은 판단이 수많은 이의 아름다운 목숨을 앗아갈 때, 꽃 같은 자식 가슴 속에 묻고 또 어김없이 눈부시게 다가올 봄날을 맞이해야 할 어버이들을 볼 때, 국민의 마름임을 자처하면서 5년 계약직 한국호 선장이 되었으면서도 선장 노릇, 마름 노릇 다 못하는 그이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작은 촛불이 흔들릴 때, 실천의 게으름을 미워하면서도 앎을 실천하지 못할 때, 눈과 손의 싸움에서 눈이 이기고 손이 기어이 지고 말 때, 작은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이를 쩨쩨하다고 말하는 이를 만날 때, 소홀함을 자꾸만 대범함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만날 때, 지금 그 사람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몸과 마음이 함께 있지 못하는 사람을 만날 때, 화려한 꽃들이 떨어진 자리에 연초록 새잎이 나는 나뭇가지를 볼 때, 다시 슬픔에 깊이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