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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부산 2015.11.06 02:33 조회 수 : 64

호수 2270호 2014.04.27 
글쓴이 장정애 마리아고레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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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애 마리아고레띠 / 시조시인, mariettij@hanmail.net

수년 전, 폴란드 크라코프에 있는 자비의 성모 수녀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2000년에 시성된 파우스티나 수녀님의 시성 기념 대성당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님은 환시로 예수님을 뵌 분으로, 화가에게 부탁하여 그린 예수님 모상과, 하느님 자비에 대한 메시지를 기록한 일기로, 자비로우신 하느님에 대한 신심을 전파하셨지요.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를 드러내시고자 쓰신 도구가, 가난한 집안의 10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힘들게 살다가 수녀가 되어서도 문지기나, 혹은 주방 같은 데서 허드렛일을 하신 분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하느님의 계획은 참으로 특별하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수녀원을 둘러보고 자유시간을 얻어 성물 판매소에 들렀습니다. 성물 판매소에는 당연히 자비의 예수님 상본이 여러 형태로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둘러보던 중에 문득 입구의 그늘에 앉아 계시던 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지요. 상본을 사려다 말고 얼른 되돌아 나와 그분께로 갔는데 멀미로 힘들어 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손수건을 찬물에 적셔 이마에 대어 드리고 등도 쓸어 드리고 심호흡을 권하며 한동안 함께 있었습니다. 일행에게 방해가 될까 염려하여 내색을 하지 않던 그분도 차츰 기운을 차리고 고마워하셨습니다. 자유시간이 끝나가는 것을 보고 주차장까지 천천히 부축하여 버스에 올랐습니다. 다음 목적지까지는 거리가 좀 있어서 그분은 잠드셨고 도착할 즈음엔 다시 기운을 차리셨습니다. 사지 못한 상본이 마음에 남았지만, 이미 떠나 버린 버스인 셈이었지요.

여행이 모두 끝날 즈음, 일행 중 한 분이 꼭 선물하고 싶었다면서 작은 봉투를 하나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비의 예수님 상본이, 그것도 석 장이나 들어있었습니다. 게다가 전체 모습과 표정을 한 장에서 다 볼 수 있도록 이중으로 제작된, 두꺼운 상본이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도와드린 분도 아니었고, 원래 친분이 있었거나, 제가 그 상본을 아쉬워했다는 것을 짐작할 만한 분도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하느님의 자비’로 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저의 아주 작은 자비 행위에 하느님께서 역시 자비로 갚아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마태 25, 36)라고 하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저의 그 보잘것없는 행동도 놓치지 않으셨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시고도 또 그렇게 살피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하여 깊이 새길 수 있었던 그 날의 기억이 오늘따라 새삼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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