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에…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보도국 부장 fogtak@naver.com
그녀는 눈물 대신 미소를 보였습니다. 무대에 나서기 전 성호를 긋고 손가락에 낀 묵주반지가 반짝이던 피겨스타 김연아 이야깁니다. 온 국민이 도둑맞은 금메달이라고 흥분할 때 그녀는 “금메달은 더 간절한 사람에게 갔다.”며 의연했습니다. 금메달을 되찾자는 서명이 요란할 때도 마지막을 잘 마무리해 홀가분하다고만 했습니다. 그녀가 그동안 짊어졌을 바위 같은 부담이 제게도 전해져 왔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아름다운 그녀의 마무리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금메달을 땄으면 미처 몰랐을 그녀의 성숙한 인격에 세상이 감동 받았으니 금메달보다 더 큰 은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김연아의 올림픽 무대 배경 음악도 화제입니다. 그녀의 쇼트 스케이팅 배경 음악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는 잃어버린 사랑의 비참함과 세월의 회한을 담은 뮤지컬 삽입곡입니다. 서커스 무대에서 떨어진 주인공이 관중의 주의를 딴 곳으로 끌기 위해 어릿광대를 부르듯 여주인공이 사랑의 실패를 이겨내기 위해 어릿광대를 불러달라고 아프게 읊조리는 노래입니다. 프리 스케이팅 배경 음악은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아버지를 추모하는 작별의 노래입니다. 쉼 없이 박자가 이어져 스케이팅하기에 어려운 곡입니다. 마지막 무대에 최고 난이도의 음악을 선택한 것은 실패의 두려움을 의젓하게 이겨내고 아름다운 작별을 고하려 했던 그녀의 뜻이 아니었을까요? 금메달보다 아름다운 퇴장을 보여준 그녀에게 진심 어린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매년 쉬지 않고 나이를 먹지만, 나는 세상의 인연과 이별할 때 김연아만큼 의연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고 최선을 다한 홀가분함으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의 실패는 두려워하면서도 마지막 순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 왔는지, 반성할 게 많습니다. 죽음의 목적이 길게 늘어선 장례 행렬이 아니라면 세상과의 이별에 미련없도록 사는 게 잘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하루 하느님께 가는 길을 충실히 살다 지상 순례가 끝나는 날 세상의 것들과 담담하게 이별하고 아름다운 미소로 주님 품에 안길 수 있으면 참으로 행복하겠습니다. 그런 나의 마지막을 그려보며 이번 사순절은 세상의 소란함 대신 기쁜 마음에서 온 절제와 침묵으로 하느님께 다가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