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61호 2014.02.23 
글쓴이 김기영 신부 

때로는 요셉처럼, 때로는 마리아처럼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 gentium92@yahoo.co.kr

저녁 무렵, 한 청년이 찾아왔다. 이 청년은 이른바, 인터섹슈얼(양성인)이었다. 인생의 반을 남자로 살아왔지만, 여성적으로 변화하는 몸과 더불어 성 정체성의 혼란이 온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었던 것은 신앙 안에서 삶의 답을 찾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조심스레 수술을 생각해보았냐고 물으니 자신은 자연체로 살아가길 원한다고 했다. 

주님의 동행을 청하며 태생 소경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자들이 소경이 된 이유를 물었을 때 예수님은 “저 사람이, 혹은 그 부모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요한 9, 3)이라 말씀하셨다. 그렇듯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같이 어려움 속에 헤매는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고자 할 때, 그가 짊어진 십자가가 그들에게 큰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며,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길 청했다. 

이어 나환우의 성자 다미안 신부님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신부님이 몰로카이 섬을 갔을 때, 나환우들은 “하느님이 있다면 건강한 사람들만의 하느님일 거라고, 아니면 왜 이렇게 자신들을 버리셨냐고.” 따졌다. 그들의 냉대 속에 신부님은 이런 기도를 바쳤다. “하느님, 저들을 위해 제발 나병에 걸리게 해주십시오.” 많은 이들이 자신과 가족들의 무사를 위해서는 기도하지만, 무엇이 신부님으로 하여금 저런 기도를 바치게 했는지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것은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었고, 그 기도는 인생을 망치는 기도가 아니라 살리는 기도가 아니었겠냐고! 신부님이 나병에 걸리고 나서 처음 올리는 미사 강론에서 “형제 여러분! 이제야 여러분을 형제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한 말씀에 몰로카이 섬의 나환우들은 뜨거운 감동을 느꼈고,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

만약, 그가 남자로서, 여자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산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행복을 자신의 남성성과 여성성 안에서만 찾지 않는다. 신앙인의 행복이란, 복음의 실천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의 성장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천국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의 성(性)을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제나 수도자, 열심한 교우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냐며 위로했다. 만약, 이 청년이 진정 마음속의 보물을 발견한다면, 때로는 요셉처럼, 때로는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면담이 끝나고 배가 고팠다. 함께 저녁을 나누면서 이 청년의 밝아진 얼굴에서 예수님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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