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와 ‘아직’ 사이

가톨릭부산 2015.11.06 02:12 조회 수 : 67

호수 2249호 2013.12.22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이미’와 ‘아직’ 사이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보도국 부장 estak@busanmbc.co.kr

기다림은 수동(受動)의 단어입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소원을 이루는 능동이 아니라,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인 의미입니다. 기다림은 또 미래의 단어입니다.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다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을 전제로 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떤 기다림은 고통입니다. 결과와 기간이 보이지 않는 막연한 기다림은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바라던 바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기다림은 설레고 기쁜 일입니다. 희망의 여부에 따라 기다림은 고통과 기쁨으로 갈립니다.

요즘은 사회주의 국가나 불교 국가에서도 성탄을 화려하게 맞습니다. 상업주의의 영향도 있지만 어쨌든 성탄은 인류사의 가장 기쁘고 성대한 축제입니다. 성탄의 기다림이 즐겁고 기쁜 이유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가 선물로 주신 인류 구원의 희망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원의 선물을 공짜로 주시지만, 사람이 갖는 구원의 희망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구원의 희망은 믿고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자세는 겸손과 인내입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아기 예수를 뵈러 가면서 세상의 높은 자리와 부귀영화를 걸치는 건 어울리지 않습니다. 왕을 기다리는 겸손한 자세로 어차피 채워지지 않는 세상의 욕심을 덜어내야, 그 자리에 아기 예수의 기쁜 선물이 자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드러났지만, 우리의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일 겁니다. 구원은 내가 원하는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쁜 마음으로 인내하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게 그리스도인의 기다림 아닐까요?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쉽게 좌절해 스스로의 가치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이내 복수와 미움의 날을 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 겁니다. 주님께서 주신 고통과 시련의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결국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님이 허락하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을 갖고 주님의 선물을 기다린다면, 험한 세상 살면서도 성탄을 기다리는 기쁨을 매일매일 맛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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